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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형 음악인문학자· 대구챔버페스트 대표 |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의 말처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즉 인간은 여행하는 존재다. 여행은 나 자신을 탐색하고 확장시키는 과정이며, 나다움을 지향하는 여정이다. 이번 그린보트 크루즈 여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닌,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환경재단이 주최한 그린보트는 바다 위에서 다채로운 인문학 강의를 펼치며, 내면의 항해를 가능하게 했다. 철학이 인간 정신의 근원을 탐색하고, 문학과 예술이 램프의 영혼으로서 어둠의 빛을 찾는다면, 바다는 존재 자체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았다.
그린보트는 환경 보호와 인문학적 성찰을 접목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는 것을 근간으로 한다. 물론 크루즈 자체가 탄소를 배출하고, 환경을 해친다는 일각의 비판도 있다. 항공기와 비교하면 크루즈의 탄소 배출량은 38% 적으며, 60명 이상이 탑승하는 기차여행이 이동 중 깊이 있는 대화나 강연을 지속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고, 광활한 대지, 아니 바다 위에서 환경을 논의하고 인문학적 교류를 지속하는 그린보트는 보다 환경친화적인 여행의 대안일 수도 있다. 이번 여행에서 이용한 코스타 세레나호는 독일 환경단체와 이탈리아 선급협회에서 친환경 선박으로 인증받았으며, 대기 오염을 저감하는 기술도 장착한 배였다. 그럼에도 출항 전부터 SNS에서 퍼진 선박 내부의 화려한 사진은 '환경을 이야기하는 크루즈'라는 취지와 어긋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직접 승선해 보니 오히려 오래된 007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레트로한 분위기였다. 건축가 승효상의 '빈자의 미학'을 떠올리며, 환경적 '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여행 내내 품게 되었다.
그린보트는 이동이 어려운 이들에게도 열린 경험을 제공하여, 여행의 접근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졌다. 90세 노인과 휠체어 이용자도 바다 위에서 강의를 듣고, 해풍을 맞으며 사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파도가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며, 나는 문득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시구 하나를 떠올렸다. "바람이 분다! … 살아야겠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환경 교육이었다. 파키스탄은 2년 전 국토의 1/3이 홍수로 잠겼으며, 현재의 환경 정책이 유지된다면 2050년까지 기후 난민이 전 세계적으로 10억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는 미래의 어두운 그림자였다. 환경 전문가들의 강연과 현장의 증언은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더욱이 운항 기간 동안 참가자들은 재사용 가능한 식기와 텀블러를 사용했다. 이는 강요된 의무가 아닌, 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내면화되었다. 이후 내 일상에서도 페트병 대신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플라스틱 용기 대신 종이팩 우유를 선택하게 되었다. 비록 작은 변화일지라도, 잊고 지냈던 환경에 대한 인식을 다시 환기하고 행동으로 이어가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파도와 물 사이에는 경계가 없다. 우리가 그것을 경계로 인식하면 파도는 시련과 고통이 되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받아들이면 삶의 일부가 된다. 환경을 우선하는 그린보트 여행도 마찬가지다. 세상 어디에서고 완벽한 해법이란 없는 법.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끊임없이 모색하고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며 방향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린보트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명화된 자연이자 실험의 장이었다. 우리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방법을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하늘과 바다와 파도, 그린보트에서 길을 묻다.
임진형 음악인문학자· 대구챔버페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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