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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혁동 (시인·대구문인협회 부회장) |
우리는 이미 터널을 통과해 본 경험이 있으므로 우리의 터널은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한낮에도 칠흑같이 어두운 터널의 끝엔 반드시 밝은 빛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지난날 온 세상이 캄캄하여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던 새벽 미명에 깊은 흑암을 뚫고 솟아오를 해를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그날은 예외 없이 해가 떠올랐고 우리 눈에 해가 보이든, 보이지 않든, 환한 빛이 우릴 비추고 있음을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
반만년 동안 끊임없는 외세의 침입과 셀 수 없는 내란의 내우외환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오던 조국은 1910년 식민지로 일본에 합병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1945년 해방이 되기까지, 어둠의 터널 속에서 우리 문화 말살 정책에 혈안이 된 일본의 태평양전쟁과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으로 금수강산은 잿더미가 되었고, 연이은 환난과 전란은 갓 태어난 신생 독립국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후진국으로 밀어 넣었다.
그로부터 70년이 채 못 된 '2022 최고의 국가' 보고서에서 대한민국은 '전 세계국력 랭킹' 6위로, 8위의 일본을 추월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가장 하위의 후진국에서 단시간에 산업화를 이룩한 선진국으로, 민주화를 이룬 자유민주국가로, K-팝과 K-문화를 필두로 글로벌 문화를 견인하는 문화선진국으로, 손에 손잡고 스포츠 강국, IT 강국, 방산 강국으로, 세계가 선망하는 선진 대한민국으로 우뚝 섰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앞엔 다시 캄캄한 터널이 막아선다. 멈출 수 없는 꿈과 비전 앞에 환란의 터널이 입을 벌린다. 환란의 위기가 막고서면 환란을 극복해야 한다. 인내로 불순물을 제거하고 단단히 하는 연단의 과정이 필요하다. 쇠붙이를 불에 달군 후 두드려서 단단하게 하는 연단이 있어야만 꿈이 이루어지고 소망이 이루어진다. 이제 대한민국은 성숙한 민주화와 장성한 산업화의 꿈을 향해 다시 연단의 터널을 지나야만 한다. '꿈이 있으면, 연단도 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이제 우리는 다시 새벽 미명에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솟아오르는 태양의 환한 빛을 기다려야 한다. 캄캄하고 어두울 수록 밤하늘의 뭇별이 잘 보이듯이 환란과 혼란이 요란할수록 꿈과 소망이 선명해진다. 탄핵의 남발과 계엄의 혼란이 더욱 굳건한 민주화와 탄탄한 산업화로 단단하게 다져지는 연단의 기회가 되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여혁동 〈시인·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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