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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경북 의성 도동리 성냥마을, 화려했던 성냥공장 60년…골목마다 추억으로 타오르다

2025-02-21
[주말&여행] 경북 의성 도동리 성냥마을, 화려했던 성냥공장 60년…골목마다 추억으로 타오르다
성광성냥공업사는 1954년에 설립되어 2013년 11월 가동을 멈췄다. 대문 옆에 손진국 사장과 마지막 직원들의 초상이 있으며 공장은 머지않아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할 예정이다.
가방을 든 남자가 언덕을 오른다. 몇 걸음 앞서 오르고 있는 머릿수건을 한 여인이 등에 진 것은 무엇일까. 성냥상자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언덕을 내려간다. 내려가는지 오르는지 모를 한 남자는 우뚝 선 채 저 아래 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 뒤에 또는 그들 앞에 'Science 1954'라는 사인이 그림자처럼 길다. 그것은 그들이 1954년부터 언덕을 오르내렸다고 알려준다. '고생이라 카는 것도 모르고 살았지 머. 일하러 가면서 아이 젖 먹이고 하는 것도 재미있고, 농사지어서 소복소복 들여다 놓는 것도 재미있고, 재미있으니 살았지.' 그렇게 재미있었다는 먼 시절, 여기 언덕위에 성냥공장이 있었다.

한때 직원 160여명이 하루 1만5천갑 생산
라이터·수입성냥에 밀려 2013년 가동 중단
마을미술프로젝트 선정 벽화·조형물 설치
郡, 공장재생사업 통해 복합문화공간 조성
인근 역사 깊은 향교·전통시장 등 볼거리

◆ 도동리 성냥마을

[주말&여행] 경북 의성 도동리 성냥마을, 화려했던 성냥공장 60년…골목마다 추억으로 타오르다
성냥상자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언덕을 내려간다. 성광성냥공업사는 한때 직원 160여 명이 하루 1만5천갑의 성냥을 생산했던 묵직한 공장이었다.
[주말&여행] 경북 의성 도동리 성냥마을, 화려했던 성냥공장 60년…골목마다 추억으로 타오르다
도동리 마을은 '2018 마을미술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성냥마을'이 되었다. 벽화와 조형물 등 총 25개의 작품들이 도동리 곳곳에 넓게 분포해 있다.
의성읍 도동리, 읍내 앞을 흐르는 남대천으로부터 훌쩍 물러난 동산위에 향교가 자리한다. 예부터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 교동이라 불렸지만 일제강점기 큰 길의 동쪽이라는 뜻의 도동리가 되었다. 동산의 커다란 수목들에 둘러싸인 향교는 무척 고아하다. 작은 사주문 앞의 빈터는 넉넉하고 깨끗해 많은 이들을 위한 즐거운 앞마당 같다. 그로부터 낮고 간소한 집들과 좁은 골목길이 동산을 뒤덮은 채로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가 아래에 넓게 펼쳐지는데, 향교는 그 모습을 다정한 눈길로 오래오래 바라보는 듯하다.

향교의 정문 바로 맞은 편, 낮고 간소한 집들 가운데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높은 한 덩이 건물 군이 자리한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성냥 공장이었다는 '성광성냥공업사' 건물이다. 지금은 비워지고 군데군데 허물어져 훅 불면 날아갈 듯 보이지만 한때 직원 160여 명이 하루 1만5천갑의 성냥을 생산했던 묵직한 공장이었다. 공장의 설립일은 1954년 2월 8일이다. 천막을 치고 가동했던 초기 공장은 성냥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13개 동의 공장 건물로 늘어났고 두 대의 통근 버스가 종업원들을 출퇴근시킬 정도로 번성했었다. 이후 가스라이터가 등장하고 값싼 성냥이 수입되면서 전국의 성냥공장들은 사라지게 된다. 성광성냥은 조금 더 오래 버텼고 2013년 5월 '경북도 산업유산 향토뿌리기업'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 해 11월 가동을 멈췄다. 손진국 성광성냥 대표는 2016년 10월, 부지를 포함한 공장 일체를 의성군에 기부했다.

주변 골목 안의 집들은 반 이상이 비어있는 듯하다. 그러나 오래된 시간과 성냥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곤소곤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깨진 창문에 걸린 방범창에는 먼 산과 가까운 마을이 담겨 있다. 젊은 시절 성냥공장에서 일했던 집 주인의 얼굴이 하얀 우편함에 그려져 있다. 주름지고 웃음 띤 얼굴 곁에는 그들의 추억과 소망이 적혀 있다. '행복한 한평생' '가족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사랑하며 건강하게 살자'. 마을은 '2018 마을미술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성냥마을'이 되었다. 벽화와 조형물 등 총 25개의 작품들이 도동리 곳곳에 넓게 분포돼 있다. 성냥공장은 '성냥마을'의 중심이지만 문이 닫혀 있다. 대문 옆에 성냥개비로 만든 손진국 사장과 마지막 직원들의 초상이 있다. 손진국 사장은 초창기 성냥공장의 직원이었다고 한다.

◆ 도동리 마을 구석구석

[주말&여행] 경북 의성 도동리 성냥마을, 화려했던 성냥공장 60년…골목마다 추억으로 타오르다
젊은 시절 성냥공장에서 일했던 집 주인의 얼굴이 하얀 우편함에 그려져 있다. 주름지고 웃음 띤 얼굴 곁에는 그들의 추억과 소망이 적혀 있다.
동산을 내려오면 '의성마늘상가거리'가 나타난다. 길 서편은 2일과 7일마다 장이 열리는 의성 공설시장이다. 일제강점기 때 개설된 의성시장은 중앙선 철도 연변의 5대 시장 중 하나로 손꼽혀 왔다. 지금도 의성 마늘의 집산지로 명성이 높아 매년 6월 말에서 9월까지는 새벽 4시부터 전국의 상인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동문2'로 들어선다. 아케이드가 높다. 시장은 2003년에 대대적으로 변신했다고 한다. 현재 60개소의 장옥에 118개의 점포가 있고 노점상 수도 200여 개에 이른단다. 평일의 장터는 휑하다. 불도 켜지 않은 건어물 가게에서 노부부가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 필요했던 계피를 산다. 한 무더기에 5천원, 십년도 너끈하겠다.

'정문'으로 나와 발길가는 대로 걷다보니 '북문'이다. 문이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보지 않았지만 대여섯 정도는 될 듯하다. 북문 앞 먹거리골목 입구를 지나 죽 나아가면 의성제일교회다. 1911년에 설립되었다니 100년이 훌쩍 넘었다. 입구에 걸려 있는 녹슨 종이 오랜 시간을 말해준다. 교회 옆 골목을 빠져나가면 도동 어울림센터다. 낡은 집들을 수리해주는 마을 목수방, 소통 공간인 북카페, 여러 행사가 치러지는 강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주 간결하고 세련됐고 무엇보다 깜찍하다.

도동 어울림센터 뒤편으로 아사천이 흐른다. 아사천은 의성읍을 동서로 가로질러 남대천에 합류하는 소하천이다. 천변 산책로로 내려가 상류를 향해 걷는다. 큼직한 하수관마다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동산교 아래를 살짝 허리 굽혀 지난다. 멀리서 지켜보던 고양이가 하수관 안으로 쏙 사라진다. 응달진 산책로는 살얼음이었다가 꽁꽁 언 눈길로 바뀐다. 드러난 여울보를 징검다리삼아 햇빛 넉넉한 저편으로 건너간다. 햇살로 환한 벽마다 예쁜 것, 흐뭇한 것, 유쾌한 것들 천지다. 밤이면 조명이 켜져 더 멋지다고 한다. 향교가 들어서 있는 동산이 절벽으로 내려서는 곳에서 산책로는 끝난다. 마을 곳곳의 새로운 것들은 마을미술프로젝트와 발맞춰 진행된 도시재생뉴딜사업의 결과물들이다.

◆ 의성향교에서

다시 동산교를 건넌다. 가까이 마주한 의성교회는 먼데서 보았을 때보다 더욱 고풍스러운 모습이다. 1908년 초가 3칸의 기도실로 시작되었다는 교회는 향교와 함께 근대 읍내의 변화를 모두 지켜보았을 것이다. 의성향교의 역사는 아주아주 오래 되었다. 고대 의성은 조문국이었고 신라에 합병된 이후에는 문소국이라 불렸다. 문소국 초기부터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 있었다고 전하며 고려 시대에는 향교의 역할도 담당했다고 여겨진다. 이후 점차 퇴락한 건물을 조선 태조 3년인 1394년에 복건 했다고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 때도 중수와 개수가 이루어졌다니 얼마나 강하게 이 공간을 지켰을지 상상도 어렵다.

광풍루에 오른다. 성냥공장을 마주하고 아래로 차르르 펼쳐진 지붕들을 바라본다. 어느 집에서 난로를 피우는지 연기가 홀홀 오른다. 어디선가 나타난 두 사람이 공장 문을 열고 안으로 사라진다. 후다닥 쫓아가 열린 문 안을 소심하게 들여다본다. 휑하다. 먼 건물 벽에 반쯤 지워진 '안전제일'이 보인다. 의성군은 이 공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미기로 하고 2021년부터 재생사업을 진행 중이다. 2025년 까지라 했으니 올해 안에 변신할지도 모르겠다. 향교와 성냥공장 사이 이 넉넉하고 깨끗한 앞마당에 즐거운 사람들 북적이는 모습 보이는 듯하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55번 중앙고속도로 안동방향으로 가다 의성IC에서 내린다. 톨게이트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5번 국도를 타고 의성 방향으로 간다. 원당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나가 의성의 관문인 숭의문을 지나면 의성읍이다. 북원사거리에서 3시 방향으로 나가 직진, 역전오거리에서 좌회전해 의성군청 앞을 지나 직진, 의성우체국이 있는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약 230m 직진한다. 오른쪽 동산에 의성교회가 보이면 우회전해 아사천 동산교를 건너 직진, 첫 번째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향교길을 오르면 의성향교가 자리한다. 향교 맞은편이 성광성냥공업사이고 앞에 주차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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