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2인자 한덕수 총리
계엄의 파편, 대통령 대행
진영을 넘어 두 번 총리직
300달러 출발, 55년 공직
한 총리 탄핵은 큰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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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논설실장 |
한덕수 국무총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12·3 계엄과 탄핵 정국의 핵심 키맨(key man)중 한 명이다. 국정의 2인자이기 때문이다. 계엄정국의 파편을 덮어쓸 사정거리에 있을 수밖에 없다. 먼저 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자 대통령 권한대행이란 '파편'이 그에게 꽂혔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번에는 총알이 날아왔다. 지난해 12월27일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권한 대행 한덕수마저 탄핵했다. 야당의 무려 29번째 탄핵 희생자였다.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고 계엄 동조, 권력 찬탈을 시도했다고 탄핵소추안에 적시했다.
한 총리는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국무총리이다. 어쩌면 마지막 총리가 될지 모른다. 윤 대통령은 한덕수를 총리로 지명하면서 "평소 존경해 왔다. 삼고초려로 모셔 왔다"고 했다. 지난 20일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심판 10차 변론 기일에 1인자와 2인자 두 사람은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헌재 심판정에 착석했지만, 증인으로 출석한 한 총리가 입정하기 수분 전에 자리를 떴다. 마주하기 서로 민망했을 거다. 한 총리는 계엄 선포 당일 밤 소집된 국무회의에 나갔다. 총리는 국무회의 부의장이다. 한 총리는 계엄 발동 직전 국무회의를 놓고 "형식적 실체적 흠결이 있었다. 회의는 간담회 수준이었다"고 했다. 이전 국회 증언과 일관된 기조였다. 국무회의의 위법성 논란을 놓고 윤 대통령에게는 불리한 진술이다. 물론 그는 '야당의 줄탄핵'이 전 세계에서도 굉장히 드문 일이다고 했다.
한덕수의 총리직은 사실 두 번째다. 노무현 정권에서 재정경제부 장관 부총리를 지낸 그는 총리로 발탁됐다. 그 이전 김대중 정권에서도 대통령실 경제수석을 맡았다. 김대중의 오른팔이자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민주당)은 지난해 9월 한 총리와의 국회 본회의장 질의응답에서 "한 총리는 제가 추천했다. 우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시면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도 극복했다"고 덕담했다. 한 총리가 이른바 보수쪽 관료로서만 빛을 본 것은 아니고, 민주당 계열 정권에서도 활약했다는 뜻이다.
눈여겨보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 19일 대통령 탄핵심판이 아닌 한 총리 자신에 대한 첫 탄핵심판 변론이자 마지막 변론이 있었다. 최후 진술에서 한 총리가 말했다. "저는 1인당 국민소득 300달러가 채 안 되던 1970년 공직에 입문했습니다. 미국 일본 독일처럼 우리보다 수십 배 잘 살던 나라들을 바라보면서 언젠가 저들처럼 풍요와 안정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며···". 300달러, 난 그 말이 너무 애틋하게 들렸다. 우린 지금 300달러의 100배인 3만달러 시대에 살고 있다.
한 총리는 55년 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통상 외교 쪽의 전문 관료로 성장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재다. 개인적으로 그의 뉴스 화면을 접하면서 난 그가 '총리직을 하기 싫어한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그냥 나의 촉이다. 그렇다고 그가 직무를 해태(懈怠)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욕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만 76세다. 총리를 두 번 지낸 그가 벼슬을 탐할 동기가 있겠는가. 한 총리는 헌법재판관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읽었다. "대한민국 역사에 3번째 대통령 탄핵이란 가슴 아픈···극단의 정치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할 뿐입니다. 법치와 합의, 자제와 성찰이 작동 원리가 될 때 대한민국은 좌나 우로 가는 것이 아니라 '위로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무래도 민주당이 큰 실수를 한 것 같다. 한 총리의 탄핵안은 헌재에서 기각되고 그는 돌아올 것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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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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