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50302010000144

영남일보TV

[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재난 문자

2025-03-04

"누군가 일으킨 전쟁의 피해

민초들이 고스란히 떠안아

잦아지는 재난도 마찬가지

이를 막고 삶을 지키기 위한

국정과 정치가 더 절실한 때"

[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재난 문자
시인

#긴급 메시지

재난 문자가 가끔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만든다. 재난 문자는 재난이 예상되거나 발생했을 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발송하는 긴급 메시지다. 2006년부터 2G 휴대폰을 기준으로 발송되기 시작했다. 지진 등 자연재해와 기상특보·정전·화재·바이러스 유행 등의 사회재난, 민방공경보 등의 국가비상사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최근 들어 특히 재난 문자가 많아진 듯하다. 재난이 빈번하다는 증거다.

제주항공 사고 등은 물론 바다의 어선 조난이 잇달아 일어난다. 일본 홋카이도의 폭설, 미국 LA의 산불은 그 규모가 엄청나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재난 역시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LA 산불은 미국 내에서 정치 문제로 대두되고 있기도 하다.

문학평론가 유종호가 '현대문학' 3월호에 실은 '재난 문자를 받고'는 고향인 충북의 지진 발생 재난 문자를 받고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준다. '2025-02-07 20:35 충북 충주시 북서쪽 22㎞ 지역 M4.2 지진/ 낙하물 여진주의 국민재난안전포털 참고 대응 Earthquake(기상청)'이란 휴대폰의 재난 문자를 그가 꼼꼼하게 적어놓은 게 눈길을 끈다. 지진 강도 4.2란 꽤 놀라운 일인데, 나중에 3.1로 정정되었다. 어쨌든 충주 지역의 지진은 미약하지만,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걸 상기시킨다.

재난의 잦음을 지구 환경이 바뀜에 따라 나타난 현상으로 보려는 시각이 강하다. 세계 곳곳의 홍수와 가뭄, 그리고 북극의 빙산이 녹아내리는 현상 등을 두고 그런 논의가 크게 인다. 예상 못했던 재난으로 인해 지구촌 사람들의 재산 피해와 사상자가 늘어난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일에만 몰두하는 정치인과 위정자들에게는 이런 재난을 남의 동네 불 보듯 하기 십상이다. 유종호는 "강대국이 주도하여 지구의 이상 징후에 대해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판에 이 점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는 강대국 지도자는 없어 보인다"며, "이를 감당할 도덕적 품격과 식견을 지닌 이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그리하여 "어느 때보다 인간 존엄의 회복이 요청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상상력

재난은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는 의외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삶이 그런 일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는 불안이 요즘 들어 더욱 커진다. 이에 따라 재난에 대한 논의와 예술·문학적 상상력이 발동한다.

재난에 초점을 맞추어 제작한 영화가 속출한다. 화재, 지진, 해일, 화산 폭발, 외계인 침공 따위가 소재이다.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의 화재를 다룬 '타워'를 비롯, '백두산' '터널' '부산행' 등의 우리나라 영화들이 최근 관심을 끌었다. 외국의 유명한 재난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거 감독의 '죠스'를 비롯, '타워링' '타이타닉' '킹콩' '고질라' 등이 꼽히며,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 외계인의 공격 등을 그리는 미미 레더 감독의 '딥임팩트' 등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

재난을 다룬 문학 작품들은 의외로 많다. 재난을 주제로 한 SF소설들도 늘고 있다. 몇 년 전 한 출판사에서 나온 생태 주제의 앤솔러지에는 미래의 재난 얘기들이 꽤 눈에 띈다. 가령 정세랑의 소설 '리셋'에서는 23세기 미래를 배경으로 지렁이가 인간을 갈아엎는 이야기다. 행성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무책임한 쓰레기만 끝없이 만들어가는 동안 어느덧 지구는 멸망을 맞게 되고 결국은 지렁이의 보복으로 인간은 비참한 처지로 빠진다는 것이다. 한편 기후 변화 문제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복합적으로 숙고하면서 쓴 듀나의 소설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도 섬뜩한 미래를 보여준다. 이러한 재난의 미래를 다룬 작품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미래에 맞이할 모든 비참과 비극적 결과가 '현재'의 탓이라는 경고를 덧붙인다.

#전쟁

전쟁은 최대의 재난이다. 많은 사상자를 낳고, 오갈 데 없이 방황하는 난민들을 만들며, 집들을 불태운다. 중동 지역의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 시대의 한 절망적인 지옥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참상이 남의 일이 아님을 우리는 불안하게 느낀다. 그래 우리도 예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지옥을 겪었던가?

최근 나온 지역사랑지 '향토와 문화' 113호에 실린 도세순의 '용사일기(龍蛇日記)' 관련 글을 그런 관점에서 새삼 눈여겨 읽는다. 이 일기는 우리가 겪었던 전쟁의 비참을 평민의 입장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도세순은 성주 사람이다. 그의 일기는 1592년 4월13일부터 1595년 1월5일까지 쓰였다. 임진왜란 때의 피란 일기다. 왜적의 살육으로 인한 공포, 피란 길의 가족의 헤어짐, 들끓는 도둑들에 의한 고초 등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모진 피란 생활에서도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일, 모친을 여윈 비통함, 동생을 황망히 보내는 애통함이 극적으로 부각된다. 피란에 따르는 기근과 전염병에 민초들은 그저 속절없이 쓰러져간다.

"가지고 있던 양식은 즉시 잃어버리고서 병든 몸을 끌고 촌락의 민가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모두 막대기를 들고 쫓아내니, 길가에 엎어진 채로 서리와 눈 위에 있은 지 이미 며칠이 되었습니다." 산의 고개에서 만난 윤금이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며 한 말이다.

'누군가가 일으킨 전쟁'으로 인한 희생을 이렇듯 민초들이 고스란히 떠안았던 것이다. 그야말로 아무런 명분도 대책도 없이 삶이 송두리째 파괴되고, 목숨마저 빼앗긴 채 잊혀 간 것이다. 어쨌든 처절하지만 살아남는 게 전부였던 삶들을 통해 도세순은 역사란 무엇인지 묻고, 나아가 임금과 위정자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전쟁의 참상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전쟁뿐만 아니라 모든 재난은 삶을 한순간에 무참하게 망가뜨린다. 재난 문자를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방지하고, 민초들의 삶을 지키기 위한 국정과 정치가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가 '재난의 시대'인 지금이 아닌가 한다.시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