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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기자〈사회1팀〉 |
"사고 초기 몇몇 언론에서 '하수관거'를 '하천'으로 표기하는 바람에 시민 불안감이 필요 이상으로 커졌습니다."
대구 서구 염색산업단지 인근 하수관거 폐수 무단 방류사고 관련해 대구 한 고위 공무원의 말이다.
지난달 28일 대구시 동인청사에서 열린 합동조사단 브리핑에선 때 아닌 표기 논란이 벌어졌다. 대구시와 서구청, 대구환경청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반은 최근 잇따르는 염색산단 내 폐수 무단 방류 사고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두 달새 네 번이나 염색 폐수 무단 방류가 발생했지만, 명확한 유출 경로 추적에는 사실상 실패했다. 그중 두 번은 합동 조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벌어졌다. 네 번 중 한 번의 폐수 방류 사고의 의심 업체를 추정한 게 유일한 성과였다. 기대 이하의 조사 결과에 조사반은 연신 고개를 숙여야 했다.
논란은 엉뚱한 데서 터졌다. 조사단이 폐수 유출에 대한 시민 불안감 확산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일부 책임을 언론에게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한 것. 조사단은 사고 초기 일부 언론에서 폐수 유출 지점에 대해 '염색산단 인근 하천'이라고 표현한 것을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폐수 유출은 하천이 아닌 하수관거에서 이뤄져 달서천 및 금호강 등의 수질에는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언론이 시민 불안감 확산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하천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지표상 흐르는 물길로 하천법상 국가하천 또는 지방하천으로 지정된 것을 말한다. '식수' 개념과도 직결된다. 하수관거는 오수와 우수 등을 모아 하수처리장과 방류지역으로 운반하기 위한 배수관로다. 이곳을 흐르는 물은 하수처리장 등의 처리를 한 번 더 거쳐 하천으로 방류된다. 분명, 하천과 하수관거 명칭이 주는 무게감은 다르다. 애초에 하수가 흐르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폐수 방류 사고에 대한 책임을 조금이나마 덜려는 의도로 읽혔다.
하지만, 하천이든 하수관거든 걸러지지 않은 염색 폐수 유출은 사회적 약속 위반이다. 하수관거라도 폐수를 무단 방류하는 행위는 조업 정지 및 5년 이하 징역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범죄다. 게다가 무단 방류된 폐수는 복개수로를 지나 지상까지 흘러나왔다. 거주지 인근 물길에 형형색색의 폐수가 흐르는 만큼 피부에 와닿는 환경오염 사례가 또 있을까. 서구 주민들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집을 내놨다는 이도 있을 정도다. 무단 폐수 방류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말도 했다. 같은 일이 반복돼도 원인조차 찾지 못하는 당국에 불만도 쏟아냈다. 며칠 지나면 또 관심조차 없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있었다. 한 서구 주민의 말을 빌려 묻는다. 하천이든 하수관거든 뭣이 중한디?
이승엽기자〈사회1팀〉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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