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유럽 퍼진 계몽주의
민주주의 이념과 자유 추동
계엄령은 반민권·몰계몽적
탄핵 혼돈…헌정수호 至難
국민, '대통령 리스크'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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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논설위원 |
볼테르, 장 자크 루소, 존 로크, 몽테스키외, 임마누엘 칸트. 이름만 들어도 휘황한 기라성 같은 사상가들이다. 이들을 한데 묶는 교집합이 계몽주의다. 계몽주의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일어난 지적·문화적·사상적 운동을 말한다. 영국에서 발원돼 프랑스를 거쳐 독일 등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교회 및 절대군주의 권위에 도전하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 신장, 봉건제도와 미신 타파를 주창했다. 계몽주의의 핵심 가치 국민주권·평등·자유·이성은 민주주의 이념과 과학적 방법론을 추동했고, 경제적·사회적 자유 확대에 기여했다. 분업의 효용성을 설파해 자유무역 사조를 확산한 고전학파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역시 계몽사상가로 꼽힌다.
광장의 극우 세력과 윤석열 대통령 변호인단이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계몽주의를 소환했다. 비상계엄령을 '국민 계몽령'으로 윤색한 저들의 어휘 구사력이 낯설고 생뚱맞다. 피동적 계몽 대상이 될 만큼 우리 국민의 지식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어있는지 의문이다. 정작 계몽됐다는 사람은 따로 있다. 윤 대통령 측 김계리 변호사는 헌재 탄핵 심판 최종변론에서 간증하듯 "저도 계몽됐다"고 말했다. 인지편향 증세가 아니라면 누가 '계몽령'에 동의하랴.
'계몽령' 주장은 "계엄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는 윤 대통령의 헌재 최후진술과 궤를 같이한다. "계엄은 야당에 대한 경고용"이라는 억설과도 맥락이 닿아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밤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해서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경고 한 번으로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겠다? '미션 임파서블'이며 자가당착이다. 계엄선포 때 일찌감치 경고용이 아니라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근대 유럽 발전을 견인한 계몽주의엔 자유·민권·법치의 함의가 녹아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계엄령은 헌법과 계엄법을 위배했고, 반민권적 포고령으로 자유를 억압하려 했다. 야만의 시대로 회귀하려 했던 몰역사적 행위였다. 몰계몽적 계엄령에 '계몽'의 옷을 입힌다? 의뭉스러운 광대극이다.
비상계엄 선포로 국민이 계몽된 부분이 있긴 하다. 졸지에 경제 하강 국면이 펼쳐지고, 정상외교가 실종되고,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하며 '대통령 리스크'를 인식한 것이다. 거짓의 가면도 확인했다.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 "임기를 포함한 거취를 당에 일임하겠다"던 윤 대통령의 약속은 허언에 불과했다. 명태균의 개헌 건의엔 "나는 왜 5년 못하느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윤 대통령 최후진술에 담긴 임기 단축 개헌 제안은 그래서 공명(共鳴)이 없다. 헌재 변론에서도 앞뒤가 어긋나는 설화를 자주 연출했다.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대면 횟수도 "딱 식사 한 번"이라고 했다가 "몇 차례 만나기도 해서 격려 전화를 했다"고 말을 바꿨다.
계엄과 탄핵의 혼돈 상황에서 국민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통감했으며, 헌정질서 수호의 지난함을 깨달았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분화하자는 공감대 형성도 자각적 계몽의 성과라 할 수 있겠다. 국회 탄핵소추 대리인단 김이수 변호사의 최종변론이 계몽의 내밀한 의미를 곧추세운다. "덕분에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와 헌법, 자유와 기본권은 단지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내면화한 가치이며 양심이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도 다시 피어난 '계몽'의 언어가 있을 법하다. '정갈한 민주주의'나 '불가역적 민주주의' 같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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