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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흑인 주인공에 불만은 없습니다만… 서장훈·현주엽 빛나던 '농구대잔치' 시절 그리워

2025-03-07
[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흑인 주인공에 불만은 없습니다만… 서장훈·현주엽 빛나던 농구대잔치 시절 그리워
대구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시즌 KCC 프로농구(KBL)' 서울 삼성썬더스와의 경기에서 대구 가스공사 김낙현이 슛을 시도하고 있다. <KBL 제공>
프랑스의 게임 회사 유비 소프트가 요즘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번에 회사의 사활을 걸고 내놓은 신작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즈'가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이다. 원래 이 시리즈는 고대 그리스, 르네상스 이탈리아, 혁명기 프랑스, 독립전쟁 시기의 미국 등의 실제 역사를 게임의 배경으로 다뤄왔으며, 주인공 또한 그 시대에 어울릴 만한 인물로 설정되곤 했다. 그런데 이번만은 예외였다. 배경은 전국시대 일본을 다루고 있는데, 생뚱맞게 흑인이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 흑인 '야스케'가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설명은 일본 게이머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시리즈는 대대로 가상 인물은 주연, 실존 인물은 조연으로 교통 정리해 온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역사 속 인물인 야스케는 조연으로 그치고, '가상의 일본인'이 주인공을 차지해야 마땅했던 것이다.

[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흑인 주인공에 불만은 없습니다만… 서장훈·현주엽 빛나던 농구대잔치 시절 그리워
박지형 문화평론가
사태가 커지고 있을 무렵, 게임의 디렉터 한 명이 놀라울 정도로 솔직한 인터뷰를 했다. "흑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은, 흑인이 일본인보다 우리가 더 몰입하기 좋은 인물이기 때문이었다"가 그것이었다. 당연히 이 발언은 일본 게이머들의 분노에 기름을 들이부어 버리고 말았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일본인 주인공에게는 몰입이 잘 되지 않는다"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편에서는 이 사태를 두고 일본인들이 흑인을 혐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었는데, 이런 반격은 큰 반향 없이 사그라들고 말았다. 애초에 미세차별적 설정을 들이밀어 놓고 그것에 대해 반응하면 역으로 인종차별주의자로 모는 그네들의 뷔페식 PC주의에 이제 다들 넌더리를 내는 분위기가 형성된 탓이리라.

그럼 한국이 무대인데 한국인이 아닌 흑인이 주인공인 사례가 있을까? 놀랍게도 하나가 떠오르긴 한다. 비디오 게임은 아니고, 실제 스포츠 경기 이야기다. 그렇다. 정답은 KBL이다. 10개 팀이 치르는 KBL의 득점 순위를 한번 살펴보자. 1위부터 11위까지가 모두 외국인 선수들이다. 그럼 리바운드는? 여긴 한술 더 떠 12위까지가 모두 외국인 선수들이다. 예전에는 그나마 서장훈, 김주성이라도 있었는데 이젠 국산 빅맨까지 씨가 말라버렸다. 한국이 무대인데 한국 선수들은 죄다 '어시스트'나 하는 조연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농구대잔치 시절, 우리 농구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건 인정한다. 그래도 그때는 이제는 서사시 속에서나 나올 법한 느낌인 '한국인 농구 스타'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했었다. "내년에는 현주엽이 고대에 입학한대. 그러면 연대와 한번 붙어볼 만하지 않을까?" 그 시절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 진짜로 가슴이 뛰었다. 림의 챔피언도, 도전자도, 모두 한국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TV 시청률은 폭발했고, 체육관 앞은 장사진을 이뤘다. 최근에 농구 경기를 예매하러 인터넷을 서핑하다 한 네티즌이 쓴 글을 보게 되니 더욱 격세지감이었다. "KBL 경기는 예매 안 해도 됩니다. 그냥 당일 날 현장에 가서 사세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대구 한국가스공사의 에이스 앤드류 니콜슨이 이번 겨울 페가수스의 명백한 주인공인 것에 대해 아무런 불만이 없다. 존 콜트레인을 닮은 멋진 눈빛과 이제는 수비까지 보완된 우아한 농구 실력을 놓고 보면, 그는 이제 KBL 전체의 주연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가끔씩은 다시 보고 싶다. 농구대잔치 시절 여고생들의 비명 속에 백덩크를 내리꽂던, 그 전설의 한국인 농구 히어로를 말이다. 여긴 한국이니까 반드시 구미(歐美) 녀석들이 더 몰입하기 좋은 캐릭터가 주인공이어야 할, 별 같잖은 이유도 없지 않은가? 박지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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