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 속 유일하게 생존한 두 남녀
지독하게 안 맞아 서로를 혐오해
최후의 인간-최초의 인간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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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영 작가의 새 장편소설 '담이, 화이'는 멸망한 세상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두 남녀가 서로 싫어하는 이야기다.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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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영 지음/민음사/228쪽/1만5천원 |
배지영 작가가 새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전작 '근린생활자'로 주변부의 인생을 보여준 그가, 이번엔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두 남녀를 던져놓았다. 인간과 사랑이 종말을 맞은 세상에서 살아남은 담과 화이가 서로 지독하게 미워하는 이야기 '담이, 화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모두 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몇 푼의 주차료는 아까워하면서도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노인도, P도 P의 와이프도, 하루 아침에 화이를 쓰레기 취급하는 눈길과 손가락을, 그리고 그녀를 아는 모든 인간들이 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9쪽)
지독하게 안 맞는 담과 화이의 공통점이 있다면 낮은 곳에서 살았다는 것. 빛도 들지 않은 곳이다. 그런 점에서 둘의 감정은 동족 혐오에 가깝다. 담은 지하에서 하수관 청소하는 일을 했다. 같이 일하는 이들에게마저도 멸시당했다. 돈이 전부인 가족과 함께 살았지만 그 전부가 없어 불행했다. 화이는 백화점 지하주차장 정산소에서 일했다. 물질과 애정이 부족했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까지 꿈꿨다. 모두 답답한 생을 살아왔으니 타인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담의 눈에 비친 화이는 게으른 데다 사치나 일삼는 한심한 여자다. 화이 입장에서 본 담 역시 쓸데없는 일에 집착하며 으스대는 남자일 뿐이다.
"문득 담은, 자신이 시체들로 가득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 갈, 새 세상의 '첫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이 아닌, 첫 사람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 담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걸 참을 수 없었다." (77쪽)
그런 이들에게 갑자기 닥친 재앙은 당혹스럽다. 그러나 가혹하진 않다. '선택'받던 삶에서 '선택'하는 삶을 살게 됐기 때문이다. 명령도 없고 혐오도 없는 세상. 지시받고, 외면받고, 버림받다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종말기가 아니라 창세기에 가깝다. 성서에 아담과 하와라는 최초의 인간이 등장하는 것처럼, 담과 화이도 이 세계에서만큼은 마지막 인간이 아니라 최초의 인간으로 다시 탄생한다.
"이토록 평화로운 디스토피아라면 세상쯤이야 싹 다 망해 버려도 괜찮을지 모른다. 지하에서 걸어 올라온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어쩌다 우연히 살아남았거나 운명적으로 '선택'받은 두 남녀가 서로 같은 마음이기만 하다면." 이번 소설에 대해 장진영 소설가는 이같이 평론했다.
저자인 배지영 작가는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란씨'가 당선되며 이름을 알렸다. 장편소설 '링컨타운카 베이비', 소설집 '안녕, 뜨겁게' '근린생활자' 등을 썼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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