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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욱의 민초통신] 대통령이라는 자리

2025-03-18

국민에 의한 적절한 통제와

지배 엘리트 책임성 요구돼

가장 크고 힘이 센 자리지만

견제와 공조로 함께 구르는

톱니바퀴 가운데 하나일 뿐

[민병욱의 민초통신] 대통령이라는 자리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대통령은 겉보기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위치인 것 같지만 막상 올라 보면 결국 권력의 톱니바퀴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 견제와 조율의 톱니바퀴

일견 기계적이고 무심한 푸념처럼 들리는 이 말은 그러나 찬찬히 되씹어보면 그 뜻이 조금씩 이해가 된다. 아무리 거창한 톱니바퀴라도 맞물린 다른 바퀴들과 밀고 엮이며, 즉 견제하고 공조하며 돌지 않는다면 그저 덩치만 큰 무용지물이란 얘기다. 엄청난 대통령직도 상호견제와 조율의 리듬을 타고 힘의 집중과 분산을 조정해나가야 제 역할을 하고 위치를 잡을 수 있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에서 양측 변호인들이 내놓은 최후 변론이 요즘 시중의 화제다. 윤 대통령 측 대리인 김계리 변호사는 "저는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계몽되었습니다!"란 한마디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자신을 "14개월 딸아이를 둔 아기 엄마"라고 소개한 그는 "제가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하느라 몰랐던, 민주당이 저지른 패악을, 일당독재의 파쇼행위를 확인하고 (대통령 변호) 사건에 뛰어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저는 계몽되었습니다"

그는 패악과 파쇼의 예로 체제전복을 노리는 반국가세력의 준동, 간첩들의 지령에 따라 일어난 사회갈등과 괴담, 야당의 탄핵 남발 및 노조와 간첩의 연계, 이태원 참사의 정치적 악용 등을 나열했다. 12·3 비상계엄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그런 일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선포한 것이며 바로 그 덕에 자신이 계몽되었다는 논리였다. 윤 대통령이 그동안 계엄 선포 담화와 변론, 지지자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옮겨온 것이 대부분으로 거기엔 북한 간첩의 지령에 따른 국가 전복 기도 등을 암시하는 주장이 빼곡했다. 민주당의 입법 폭거와 탄핵 남발 등 국정 마비에서 민주 헌정질서를 구하려면 대국민 호소용 계엄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강변이다.

반면 같은 날 국회 측 장순욱 변호사가 한 최후 변론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화제를 모았다. 그는 처음 추상적으로 운을 떼더니 "(권력자가) 오염시킨 헌법의 말, 헌법의 풍경이 온전히 제자리를 찾는 모습을 보고 싶다"란 다소 서정적 희망을 피력해 화제를 모았다. "말은 같은 말을 사용하는 언어공동체 구성원이 소통하는 수단이자 생각의 그릇"이라는 전제를 달고 "그런데 누군가 그 말을 엉뚱한 정반대의 의미로 쓴다면 소통은 불가능하고, 더욱 그 누군가가 바로 권력자라면 소통단절은 물론 공동체는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헌법의 말, 풍경을 제자리로

같은 의미로 써야 할 언어가 대통령과 일반의 국민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인다는 건 사실 섬한 얘기다. 장 변호사는 그 예로 "윤 대통령은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면서 헌법수호를 내세우고, 협치를 말하며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척결하겠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무너트리면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말하고, 헌법을 파괴하는 순간에도 헌법수호를 얘기한다"라고 지적했다.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 하에서라면 정치적 반대파도 존중·보호해야 마땅한데 오히려 이들을 척결하겠다고 나서는 일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가꾸는 일로 둔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우리는 같은 사안에 대해 전혀 다른 판정을 내리는 두 개의 눈을 만나게 된다. 정권 정부에 대한 야당 견제는 한쪽에선 '일당독재 파쇼행위', 심하면 '간첩의 지령'이 되지만 다른 쪽은 복수정당제에서 '존중하고 보호받아야 할' 정치적 반대의견일 따름이다. 야당과 진보 시민사회는 대통령 측에선 파렴치한 종북 전체주의 세력이지만 국회 측 눈에는 건강한 비판을 하는 협치의 대상이다. 이러니 군대를 동원해 국회와 선관위를 장악하고 정치인들을 체포하려 한 계엄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완전히 뒤바뀐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대통령 측은 윤 대통령을 일당독재 파쇼의 피해자며 최후의 저항권으로 계엄을 사용한 의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국회 측은 국민의 민주 의식과는 전혀 동떨어진 대통령이 오로지 자기 권력을 강화하려고 군대를 동원해 국민과 국민대표인 국회 권리를 침탈한 죄인으로 본다. 친위 쿠데타 내란을 획책 실행하고도 뻔뻔하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국민을 갈라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최소 원리

이 두 주장은 지금 탄핵 찬반의 광장에서도 뜨겁게 맞서고 있다. 양측 모두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의 수호라는 같은 단어를 외치지만 그 쓰임은 가해자와 피해자만큼 판이하다. 양측의 이념이, 신봉하는 규범이 음은 같으나 뜻이 다른 언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광화문에서 말하는 민주주의와 시청 앞에서 쓰는 민주주의가 다른 뜻이라면 민주주의에 기반해 만들어진 우리 헌법도 양측에서 달리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적어도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어떤 것인가 정도는 함께 정의하고 공유해야 공동체 최고 규범인 헌법이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규범이 없는 사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학에서는 민주주의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갖추고 지켜야 한다는 최소한의 원리, 정의 같은 것을 제시하고 있다. 학자들은 그것을 대략 '①국민 주권 ②정치 평등 ③국민 협의 ④다수 지배의 원리에 따라 조직된 정부 형태' 라는 네 가지로 나누어 보고 있다. 또 이렇게 모든 국민의 고른 주권 행사로 구성된 권력과 공직의 엘리트를 국민이 적절히 '통제하는' 데에 바로 민주주의의 정수가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공직과 권력을 향한 엘리트의 '경쟁'과 정기적 선거를 통한 '선출', 또 공직에 있는 엘리트 권력을 '제한'하는 한편으로 무능 불성실 엘리트의 '제거' 등을 통해 국민이 권력자와 공직자를 통제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통제가 가능하기에 역으로 지배 엘리트는 국민에 대한 '책임성'을 높여 나간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얘기로 되돌아 가보자. 대통령이란 자리는 물론 가장 크고 센 힘을 내는 톱니바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것은 주권이라는 국민 전체의 권력에 이를 수 없으며 견제와 조율을 전제로 마련한 3권분립의 다른 바퀴를 멋대로 제한하거나 빼앗을 수 없다. 아무리 커도 공조하며 함께 구르고 통제받는 톱니바퀴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주중 이에 기반해 판결을 내릴 것이다. 대통령 자리가 갖는 책임성을 그렇게 물어야 민주주의와 헌법, 그리고 법치가 산다.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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