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배척한 소크라테스
역사는 기술에 대한 불안이
얼마나 과장되는지 보여줘
AI시대 인간 본능적 경계심
새 물결 막는 장벽 돼선 안돼
![[시선과 창] 두려워하는 소크라테스가 되지 말자](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3/news-p.v1.20250326.de11df55b07f40749d61c5a03d3bf19b_P2.jpg)
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The past is a foreign country: they do things differently there." (과거는 외국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다르게 산다.)
영국 소설가 L.P. 하틀리의 1953년 작 '중개자(The Go-Between)'의 첫 구절이다. 과거는 그 자체로 낯선 외국이다. 현대인의 사고로는 이해되지 않는 영역들이 많고, 과거의 사람들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다른 유행을 향유하고, 다른 경로의 삶을 산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현대적 관점에서 과거를 평가하거나 재단하는 오류를 쉽게 저지른다. 미래의 후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고 묘사할까? 그리고 과거인인 우리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필자는 2천500년 전 고대 그리스를 주목한다. 훗날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받는 소크라테스가 그곳에 있다. 서구의 종교와 지적 전통의 시원(始原)이 모두 그와 그의 제자인 플라톤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았던가? 필자는 그의 견고한 위상에 흠집이라도 내듯,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소크라테스가 한 권의 책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모든 사상 체계는 제자 플라톤의 기록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왜일까? 플라톤 '파이드로스'에 나오는 그의 이유는 간단하다. '책이라는 매체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철학자라면 더더욱 책에 의존해서는 안 되었다. 학문은 사고와 암기, 생산적인 토론을 통해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지, 불완전한 문자를 통해 유통될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람들이 텍스트에 의존하게 되어,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현대의 사고로는 이해하기 힘든 지점이다.
시대는 변했고, 우리 시대의 두려움도 새롭게 변모했다.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기술의 물결 앞에서, 많은 이들이 본능적인 경계심을 느낀다. AI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을까, 인간 고유의 창의성이 사라질까, 깊은 사고없이 AI에 의존하게 될까. 이런 불안은 소크라테스가 문자 문화에 대해 품었던 두려움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당시에는 책이, 오늘날에는 AI가 '인간의 진정한 사고력을 퇴화시킬 위험한 기술'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러한 패턴은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도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1990년대 인터넷이 대중화되던 시절, 수많은 비판과 염려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인터넷이 사회적 관계를 파괴하고, 집중력을 저하시키며, 깊이 있는 사고를 방해할 것이라 우려했다. '정보의 홍수'가 오히려 지식의 빈곤을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인터넷은 어떤 존재인가?
역사는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과장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책은 인류 문명을 발전시켰고, 인터넷도 세상을 연결했다. 물론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신중한 성찰은 필요하다. 윤리적 기준을 세우고, 적절한 규제 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두려움이 혁신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AI와 함께 살아갈 미래 세대를 곧잘 상상해본다. 변화는 언제나 불안을 동반하지만, 그 불안을 극복할 때 비로소 우리는 더욱 성장할 것이다. 두려워하는 소크라테스가 되기보다, 그 새로운 가능성을 열린 마음으로 맞이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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