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안동서 주택 952채 전소…일상마저 무너졌다](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3/news-p.v1.20250327.0e32bd013bd44cf3a07bf313786d79ab_P1.jpg)
안동 산불 이재민 대피소가 마련된 안동실내체육관에 이재민을 위한 텐트가 쳐있다. 손병현 기자
![[르포] 안동서 주택 952채 전소…일상마저 무너졌다](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3/news-p.v1.20250327.148630397e4643d7965ae9f6e7031023_P1.jpg)
안동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서 빵을 받은 어린이들이 해맑게 웃고 있다. 손병현 기자
3월의 끝자락 안동·의성·청송·영양·영덕 등 경북 북동부는 봄기운보다 먼저 들이닥친 화마로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다. 주민들은 불길을 피해 대피소로 향했다. 산야는 잿더미로 변했고, 상가 셔터는 모두 내려졌으며, 학교 종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하다. 경북산불이 발생한 지 엿새째인 27일 경북에서만 1만8천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중 8천700여명은 산불 확산을 우려해 여전히 대피소에서 쪽잠을 자며 힘겨운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다. 집으로 돌아간 9천800여명은 불에 탄 보금자리를 마주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안동시 길안면에서 만난 한 주민은 대피 당시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화마가 눈앞에서 발톱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집에서 챙겨 나온 것이라곤 옷 몇 벌뿐이었다고 한다.
학교는 긴급 휴업에 들어갔다. 마을회관과 인근 학교, 체육관은 대피소로 바뀌었다. 그곳에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은 체육관 바닥에 놓인 담요 위에 앉아 빵과 생수를 받아들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경북교육청은 131개 학교에 휴업 및 원격수업 조치를 내렸다. 안동·청송·의성·영양·영덕 등 5개 지역 9개 학교는 직·간접적으로 불에 그을렸다. 총 1천212명의 학생이 체육관과 강당, 공공청사 96개소로 긴급 대피했다. 지난 25일 오후 국립경국대학교(안동·예천)에도 긴급 휴교령이 떨어졌다. 기숙사에 머물던 학생과 외국인 유학생 900여 명은 학생회관과 체육관으로 몸을 피했다. 밤 늦게까지 수백 명이 대피소에 머물렀고, 일부 학생은 한밤중에도 짐 하나 챙기지 못한 채 맨몸으로 나와 있었다.
이맘때면 넘쳐나던 관광객도 사라졌다. 안동의 하회마을, 병산서원, 만휴정 등은 언제 덮칠지 모를 화마에 대비한 소방인력만 보일 뿐 적막하다. 천년고찰인 의성 고운사는 시설 대부분이 불에 타버렸다. 봄철 등산객이 넘쳐나야 할 청송 주왕산은 지금도 불길에 휩싸인 채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다.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행인으로 넘쳐나야 할 안동 옥동 중심가도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옥동에서 15년째 호프집을 운영해 온 한 상인은 “추위 풀리면 사람들 나올 줄 알았는데, 연기만 자욱하고 손님은 없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경기 안 좋은 와중에 산불까지 겹쳐 이젠 정말 막막하다"고 했다. 봄내 나는 바닷바람이 일품인 영덕 해변에도 인적이 끊기기는 마찬가지. 영덕읍은 이번 경북산불에 직격탄을 맞으며 상당수 시설이 초토화됐다.
산불은 도로마저 집어삼켰다. 서산영덕고속도로 동상주IC~영덕IC, 중앙고속도로 의성IC~예천IC 구간은 30시간 이상 통제됐다. 차량은 꼼짝 못하고, 청송휴게소와 점곡임시휴게소는 불에 탔다. 봄맞이 축제도 줄줄이 취소됐다. 전통시장 활기도 사라졌다. 사람 없는 봄날을 맞은 이들 지역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또다시 긴 겨울에 갇혔다. 산불은 삶터까지 앗아갔다. 안동 일직면에 살던 한 주민은 “산에서 불이 내려올 줄은 몰랐다.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 뛰어나왔다"며 “언제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긴급 지원을 약속했지만, 그것은 아직 먼 이야기다.

마창훈

남두백

피재윤

손병현

정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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