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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불씨가 떠난 자리, 바다야 어쩜 좋으냐

2025-03-30
詩/불씨가 떠난 자리, 바다야 어쩜 좋으냐

경북 북부 산불 주불이 진화된 28일 오후 영덕 해맞이공원에서 바라본 산 능선이 산불로 검게 변해 있다. 22일 의성에서 시작된 불길은 26일 영덕까지 번졌고, 28일 내린 2.3mm의 단비의 도움으로 주불이 진화됐다. 산불은 75km를 넘어 이곳까지 확산되며 4만5천여ha의 산림과 주민 삶을 앗아갔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경북 왜관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김기홍(55)씨는 최근 경북 북동부지역 대형산불로 자신의 고향인 영덕이 큰 피해를 입자 바쁜 회사 일도 제쳐두고 영덕 노물리로 달려갔다.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린 고향 마을을 두 눈으로 목격한 김씨는 큰 충격을 받았고, 애달픈 마음을 시(詩)에 담아 영남일보에 보내 왔다. '우리 엄마 장독대 물어내라'는 김씨의 소리없는 외침을 독자 여러분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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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가 떠난 자리, 바다야 어쩜 좋으냐>

불씨가 떠난 자리,

바다야 어쩜 좋으냐.

타버린 지붕,

잿빛으로 내려앉은 마당,

그 위엔 아직도 타다 만

엄마의 장독대 자리가 남아 있다.

아버지의 낚싯대와 그물이 남아 있다.

기둥과 천장은 무너졌고

창문은 허공을 바라본다.

망연자실 (罔然自失)

고향 언덕 위에 서서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

혀를 찌르는 헛웃음, 참아 삼킨 원망,

그저 노부모의 안부를 묻고자,

고향집과 조상의 유택을 살피러 온 이들…

불탄 배를 바라보며

바다에게 묻는다.

헛웃음으로, 슬픔으로.

해녀 엄마의 손길이 닿던 갯바위,

아버지의 가슴 같던 그 바다를…

말없이 마주 보고 서 있다.

눈물은, 눈으로 보기 전엔 흘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저 '불씨'였던 그것이

아버지의 못 박힌 손과 거친 기침,

엄마의 맛깔스런 묵은장 맛,

내 어릴 적 웃음까지…

다 삼켜버렸다.

바다야…

어쩜 좋으냐.

우리 엄마 장독대,

물어내라.

우리 아버지의 낡은 밧줄과 그물,

굳은살 박힌 손,

물어내라.

내 친구의 추억과 골목 돌담길,

물어내라.

2025년 3월 28일


기자 이미지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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