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민 대피소 생활 일주일째
“논밭도 다 타버려 삶 막막
이제 농사 시작해야 하는데

1일 오후 경북 영덕군 축산면 경정리 마을에서 산불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이 전소된 수산물 가게 앞 평상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안동과 청송, 영양, 영덕 등 5개 시·군을 휩쓸면서 3천700여 명의 삶의 터전을 빼앗았다. 각 지자체는 이재민을 위한 긴급거주시설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수십년을 살았던 집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의 마음은 막막하기만 하다.
청송군 진보면 기곡리에 거주하던 박모(75)씨는 이번 산불로 가옥이 전파되면서 진보문화체육센터에서 지내고 있다. 박씨는 “긴급대피 명령을 받고 불길부터 피하자는 생각에 아무 생각도 없이 집을 나왔다. 다음날 집을 찾아가 보니 모두 불에 타버렸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심정"이라고 한탄했다. 이들은 당장에 먹고 자는 문제는 해결됐지만, 이재민 대부분이 농민들이라 다들 걱정이 태산이다. 당장 농사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인데, 농장비조차 없어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진보면 괴정리에서 대피소로 온 지 모(69)씨는 “당장에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아 대피소에 있지만, 농사라도 지으려면 집 근처에 머물 곳이 있어야 한다"며 “뉴스를 보니 안동은 임시주택을 설치했다고 하는데 청송군도 빨리 조치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청송군에서 대피소를 운영한지 일주일째, 집이 전소돼 돌아갈 곳 조차 없는 이재민들은 하염없이 군청과 도청, 정부의 말에 귀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군에서도 아직까지 긴급거주시설에 대한 정확한 물량과 설치 일정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번 산불로 경북에서 전소된 주택은 3천500여 채로 추산된다. 이 중 청송에서만 주택 770동이 소실됐다. 경북도는 임시 조립주택 1천500 동을 긴급주거시설로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턱없이 부족해 이재민들의 마음은 타들어가고 있다.
안동에서도 아직 1천114명이 귀가하지 못한 채 일주일째 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다. 대피시설에서 만난 길안면 주민 A씨는 “집도 집이지만, 논밭이 다 타버려 앞으로의 삶이 막막하다"며 “이젠 돌아갈 집도 없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침에 눈을 뜨기가 두렵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마을주민 모두가 피해를 입었지만, 그나마 돌아갈 집이 남아 있는 친구가 부럽다"고 했다.
1일 오후 4시 현재 안동에선 주택 1천239채가 전소 또는 반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저온저장 창고 등 농·축산 시설물도 3천234동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돼지 2만574두, 닭 17만2천243수 등 총 19만6천788마리의 가축 피해가 발생했으며, 문화재로 지정된 11곳과 복지시설 등 기타 시설물도 10곳이 피해를 입었다.
정운홍·피재윤기자 jwh@yeongnam.com

정운홍

피재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