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 지음/김정아 번역
/엘리/344쪽/2만2천원
獨 철학자 벤야민의 문학작품집
꿈·몽상·여행놀이·교육론 다뤄
대부분 생전에 미발표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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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집필에 몰두하고 있는 발터 벤야민. 〈한길사 제공〉 |
위대한 사상가는 어떤 문학을 꿈꿨을까? 독일의 천재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문학작품집 '고독의 이야기들'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벤야민은 언어철학, 매체이론, 문예비평 등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문학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끊임없이 장소를 옮겨 다니는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도 쓰는 걸 놓지 않았다. 사는 내내 소설, 설화, 우화, 비유담, 수수께끼 같은 것들을 썼다. 이 책은 그런 작품 42편이 담겼다. 벤야민 생전에 대부분 발표되지 않았던,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한 텍스트들이기에 더욱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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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템킨 총리는 우울증이 심했고 거의 주기적으로 재발했는데, 그런 시기에는 그에게 가까이 가거나 그의 집무실에 들어가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었다. 궁정에서는 아무도 그의 우울증을 화제에 올리지 않았다.(특히 그의 우울증을 언급하면 누구라도 카타리나 여왕의 눈 밖에 나게 된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언젠가 한번은 장관의 우울증이 유달리 길게 진행되면서 심각한 실정(失政)이라는 결과가 빚어졌다. 여왕이 처리하라고 한 서류들이 쌓여 있었지만 포템킨의 서명 없이 서류를 처리하기는 불가능했다. 고위 관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네 가지 이야기' 中)
특별한 건 여기 실린 작품들이 벤야민의 아이디어, 사유의 움직임을 앞서 보여준다는 점이다. 벤야민이 자신의 관심사를 어떤 형식으로 표현했는지 알 수 있다. '네 가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차르의 말단 관리 슈발킨과 유대교 경건파 걸인은 향후 프란츠 카프카에 관한 에세이에 다시 나온다. '두 번째 자아'에 등장하는 '카이저파노라마'는 벤야민의 대표적인 저서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벤야민 사상에 대해 조예가 깊은 미국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이 책을 두고 "벤야민 읽기를 놀라운 방식으로 재조정할 굉장한 선물"이라고 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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