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50404010000326

영남일보TV

[신간] 고독의 이야기들, 위대한 사상가는 어떤 문학을 꿈꾸었을까

2025-04-04

발터 벤야민 지음/김정아 번역

/엘리/344쪽/2만2천원

獨 철학자 벤야민의 문학작품집

꿈·몽상·여행놀이·교육론 다뤄

대부분 생전에 미발표된 이야기

[신간] 고독의 이야기들, 위대한 사상가는 어떤 문학을 꿈꾸었을까
1937년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집필에 몰두하고 있는 발터 벤야민. 〈한길사 제공〉
"내가 그리워한 대상은 왜 그렇게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일그러져 있었던 것일까? 답: 꿈에서 내가 그 대상에 너무 가까이 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때 처음으로 경험한 그리움, 아예 그리움의 대상 안으로 들어가 있던 나를 엄습했던 그 그리움은, 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데서 비롯되어 대상을 그리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그리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복된 그리움이었다. 상상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 사이의 문턱을 이미 넘어서 있는 그리움. 그런 그리움은 이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 뿐이다. 그리운 사람은 이름 속에서 생명을 얻고 몸을 바꾸고 노인이 되고 청년이 된다. 이름 속에 형상 없이 깃든 그는 모든 형상의 피난처다." ('너무나 가까운' 중)

위대한 사상가는 어떤 문학을 꿈꿨을까? 독일의 천재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문학작품집 '고독의 이야기들'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벤야민은 언어철학, 매체이론, 문예비평 등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문학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끊임없이 장소를 옮겨 다니는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도 쓰는 걸 놓지 않았다. 사는 내내 소설, 설화, 우화, 비유담, 수수께끼 같은 것들을 썼다. 이 책은 그런 작품 42편이 담겼다. 벤야민 생전에 대부분 발표되지 않았던,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한 텍스트들이기에 더욱 관심을 모은다.

[신간] 고독의 이야기들, 위대한 사상가는 어떤 문학을 꿈꾸었을까
책에 실린 42편의 글은 대개 짧은 이야기 형식이다. 이성의 영역과 환상의 영역 사이 문턱을 넘나드는 꿈의 세계, 대도시 생활에 감도는 성애적 긴장감, 이동과 여행 중에 발휘되는 상상력, 어린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인간 언어의 가능성 등을 탐구한다. 글은 크게 꿈과 몽상, 여행 놀이와 교육론이라는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눠 실렸다. 1부는 벤야민이 꾼 꿈과 몽상에 관한 글들이다. 2부는 지상과 해상의 풍경, 크고 작은 도시를 지나는 이야기들과 거기서 느낀 것들이다. 3부에선 말장난과 놀이를 탐색한다. 그는 어른들이 말장난과 놀이의 즐거움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포템킨 총리는 우울증이 심했고 거의 주기적으로 재발했는데, 그런 시기에는 그에게 가까이 가거나 그의 집무실에 들어가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었다. 궁정에서는 아무도 그의 우울증을 화제에 올리지 않았다.(특히 그의 우울증을 언급하면 누구라도 카타리나 여왕의 눈 밖에 나게 된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언젠가 한번은 장관의 우울증이 유달리 길게 진행되면서 심각한 실정(失政)이라는 결과가 빚어졌다. 여왕이 처리하라고 한 서류들이 쌓여 있었지만 포템킨의 서명 없이 서류를 처리하기는 불가능했다. 고위 관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네 가지 이야기' 中)

특별한 건 여기 실린 작품들이 벤야민의 아이디어, 사유의 움직임을 앞서 보여준다는 점이다. 벤야민이 자신의 관심사를 어떤 형식으로 표현했는지 알 수 있다. '네 가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차르의 말단 관리 슈발킨과 유대교 경건파 걸인은 향후 프란츠 카프카에 관한 에세이에 다시 나온다. '두 번째 자아'에 등장하는 '카이저파노라마'는 벤야민의 대표적인 저서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벤야민 사상에 대해 조예가 깊은 미국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이 책을 두고 "벤야민 읽기를 놀라운 방식으로 재조정할 굉장한 선물"이라고 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