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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 아들과 행복한 눈맞춤…“아이보다 오래 살 수 있길”

2025-04-17
뇌병변 아들과 행복한 눈맞춤…“아이보다 오래 살 수 있길”

17일 오전, 서모씨가 뇌병변 장애를 가진 아들의 아침식사를 챙기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뇌병변 아들과 행복한 눈맞춤…“아이보다 오래 살 수 있길”

17일 오전, 어린이집 등원을 위한 나드리콜 예약에 실패한 서모씨가 지인의 차량을 이용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서씨가 뇌병변장애를 가진 아들을 안고 차량에 탑승하는 모습.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언제 경기 일으킬지 몰라 늘 예의 주시

한 달 생활비 중 물리치료비 40% 차지

“내가 아프면 안 된단 생각에 '홈트'로 -40kg

필요한 사람 이용 못 하는 나드리콜 개선을"

17일 오전 6시 대구의 한 아파트. 알람 소리와 함께 서모(여·35)씨의 눈이 번쩍 떠졌다. 뇌병변 장애를 앓는 아들 서모(11)군을 돌보는 서씨의 하루가 오늘도 어김없이 시작됐다. 첫 일과는 물 끓이기. 기관지가 약해 천식증상이 있는 아들에게 먹여야 한다. 동시에 아침 식사도 준비한다. 죽과 요플레 등 부드러운 음식이 주메뉴다. 구강 저작(씹는) 운동이 불가능해서다. 오전 7시20분 서군이 눈을 떴다. 일어나자 마자 경기를 했다. 서씨는 아이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경기가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뒤 한마디. “우리 아들, 잘 잤어?" 서군을 힘껏 안아준다.

서씨는 아침 식사 내내 가슴 품에서 서군을 놓지 않았다. 안고 먹이지 않으면 아들의 고개가 자꾸만 뒤로 젖혀져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한 팔로는 아들의 뒷목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죽을 조금씩 떠 입에 넣어 준다. 한 번에 조금씩, 천천히 먹이다보니 한 시간이 흘렀다. 팔이 저리고 손목이 시큰거리는 고통은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다. 밥을 다 먹인 뒤 곧바로 약을 먹인다. “콜록콜록". 서군이 기침을 내뱉었다. 약 먹이기가 버거울 정도로 아들의 상태가 우려됐지만 서씨는 단호했다. “뱉으면 안 돼." 그러면서 연신 서군의 등을 두드렸다.

오전 8시30분 아들의 기저귀를 갈고, 장애아동이 다니는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한다. 곧장 스마트폰 앱으로 나드리콜(교통약자콜택시)을 호출했다. 운이 좋으면 바로 콜이 잡히지만, 그런 행운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아들이 어린이집을 가는 날은 월·화·목·금요일이다. 나드리콜 대기자만 매일 100명이 넘는다. 이날도 136명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서씨는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해 개인 차량으로 이동했다. 서씨 혼자 아들을 휠체어에 태워 도시철도를 이용하는 날보다 수백, 수천 배 나은 편이다.

서군이 어린이집에 간 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오롯이 서씨 혼자만의 시간이다. 하지만 청소, 빨래 등 밀린 집안일이 산더미고 저녁 식사도 준비해야 한다. 오전 시간을 눈코 뜰 새 없이 보낸 터라 식사조차 차려 먹을 기운이 없었다. 이 시간에도 서씨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어린이집에서 서군이 발작을 일으켰다는 연락이 언제 올지 몰라서다. 하원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으로 다시 달려간다. 아들을 데리고 와 저녁을 챙겨주면 오후 6시30분. 씻기고 약을 먹인 뒤 밤 9시쯤 재운다.

고단한 하루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서군은 밤 11시와 오전 1~2시쯤 경기를 한다. 그 소리를 놓칠까 걱정된 서씨는 오전 2시까지 잠들지 못한다. 그의 하루 수면 시간은 고작 4시간 남짓. 아들이 더 어릴 적엔 하루를 꼬박 새는 날도 허다했다. 서씨는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행복하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하루하루 아들을 돌본다. 곁에 아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다.그 자체가 만족스러운 삶이다"라고 했다.

서씨네의 일상을 깊이 들여다보면 더 안타깝다. '강직성 사지마비 장애'가 있는 서군은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렵다. 아들을 돌보기 위해 생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장애아동을 키우면 약값, 치료비 등 돈이 많이 드는데 아이 곁을 떠날 수가 없어요. 일은 꿈도 못 꿔요." 서씨의 나지막한 목소리에서 감당할 수 없는 떨림이 느껴진다. 서씨네 가구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 있다. 생계급여와 각종 수당,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의 지원을 합쳐 손에 쥐는 금액은 월 120만원. 가장 큰 부담은 역시 치료비다. 강직성 사지마비는 꾸준한 물리치료가 필수여서 근육을 계속 주물러 주지 않으면 근육이 더 빨리 굳는다. 물리치료비로 서씨가 내는 돈은 한 달에 46만원. 한 달 생활비의 약 40%를 차지한다.

대학병원에선 거의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지만 사설 병원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대학병원에 대기 예약자가 넘쳐나서다. 서씨는 “대학병원 여러 곳에 대기를 걸어 둔 지 2~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연락이 없다. 병원도, 인력도 제한적이다 보니 아들이 열 살이 되면서부턴 다른 기관에서 치료받을 것을 권유받았다"고 하소연했다.

나드리콜 등 이동 수단을 날마다 확보하는 일은 서씨와 서군을 더 지치게 한다. 어린이집 등·하원과 물리치료 등 매일같이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선 이동 수단이 무조건 필요하다. 하지만 나드리콜 잡기는 '하늘의 별따기'. 몇년 전 겨울엔 밖에서 한 시간가량 나드리콜을 기다리며 벌벌 떨기도 했다. 결국 아들이 폐렴에 걸렸다. 서씨는 “나드리콜 기사분께 여쭤보니 정작 우리처럼 필수로 나드리콜이 필요한 이들보다 팔공산에 나들이 가거나, 목욕탕·맛집을 가기 위해 나드리콜을 타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다"며 허공을 향한 원망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여러모로 여건은 힘들지만 서씨는 굳건했다. 아들을 제대로 돌보려면 우선 자신이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에 임신중독으로 급격히 늘었던 체중을 스스로 감량했다. 서군이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집에서 운동과 식단 조절만으로 무려 40㎏을 감량했다. 서씨는 “힘들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아들 앞에선 눈물조차 흘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며 “장애아동을 키우는 모든 부모에게 똑같이 물어보라. 모두 저처럼 얘기하며 희망의 끝을 이어갈 거다"라고 했다. 이어 “아들은 내 뱃속에서 열 달을 품어 낳은 '축복' 같은 아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두고 내가 먼저 눈을 감지 않는 게 자그마한 소망이다. 장애가 있는 아들을 영원히 품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했다. 서씨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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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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