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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경남 창녕 남지 개비리길, 낙동강·남강 두물머리, 봄이 그린 연둣빛 수채화

2025-04-18
[주말&여행] 경남 창녕 남지 개비리길, 낙동강·남강 두물머리, 봄이 그린 연둣빛 수채화
창나리 낙동강변 도시숲의 억새전망대. 제방에서부터 목교로 이어지는 정자형 팔각 파고라다. 전망대는 남강과 낙동강 본류가 만나는 것을 내다보고 있다.
좌회전을 기다리는 차량의 열이 길다. 그들은 모두 둑을 넘어 강변으로 가려는 것이다. 거기에는 유채 꽃밭이 있다. 무심히 긴 열의 꽁무니에 붙어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대열을 이탈해 직진한다. 남지읍을 가로지르며 주말에 축제가 열린다는 플랜카드를 본다. 남지의 유채, 그 넓디넓은 노랑을 떠올리며 선잠 같은 거리를 지난다. 곧 왼쪽으로 낙동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른쪽으로 용산리 마을 표석을 발견한다. 그리고 산으로 가로막힌 길 끝에 다다른다. 이곳은 낙동강변에 나루가 있던 마을, 용산리 창진이다.

낙동강변 도시숲 억새전망대
다양한 나무 심어 아름다운 경관
두개의 강물 만나는 곳 내다보여
곽재우 장군 기강전투 역사 현장

'명승' 지정된 남지 개비리길
창나루~영아지 연결하는 좁은 길
수십미터 절벽 위 아슬아슬 지나
조선시대 지도에도 기록 된 옛길

◆ 남지읍 용산리 낙동강변 도시숲 억새전망대

[주말&여행] 경남 창녕 남지 개비리길, 낙동강·남강 두물머리, 봄이 그린 연둣빛 수채화

죽림쉼터. 아주 울창한 강변 대숲으로 여양진씨 재실인 회락재가 있던 곳이다. 2015년 옛길 조성사업 때 쉼터로 조성했다. 

 

커다란 목선이 뭍에 올라서 있다. 진짜 배는 아니지만 몸은 저절로 승선의 출렁거림을 느끼는 듯 두근댄다. 창진은 신라 때 군사용 큰 창고가 있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우리말로는 창나리, 나리는 나루다. 몽롱하여 휑한 강변의 개활지는 '낙동강변 도시숲'이라는 이름으로 가꾸어져 있다. '황금메타세쿼이아, 느티나무, 이팝나무, 수양벚나무 등의 교목류와 조팝나무, 명자나무, 화살나무, 은행나무 등의 관목류, 그리고 목수국(라임나이트) 등의 초화류가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한다'는 안내판을 읽는다. 이곳은 가을의 억새와 백일홍, 그리고 핑크뮬리로 이미 이름나 있다. 지금은 뜻밖의 튤립과 약간의 유채가 꽃을 피웠고, 모든 나무마다 연둣빛 새순으로 아득 망연하다.

한쪽에는 억새 전망대가 자리한다. 제방에서부터 목교로 이어지는 정자형 팔각 파고라다. 전망대는 두 개의 강물이 만나는 것을 내다보고 있다. 정면으로 흘러오는 강은 남강이다. 오른쪽에서 흘러오는 강은 낙동강 본류다. 옛사람들은 두 강이 합류하는 지점을 기음강(岐音江) 또는 기강(岐江)이라 불렀다. 강이 갈라진다는 의미다. 두 강의 흐름이 달라 물소리로 구분되는 강이라는 의미도 있다. 강의 왼쪽은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다. 오른쪽은 의령군 지정면으로 '호국 의병의 숲'이 넓게 자리한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이 승리를 거둔 기강전투의 역사적 장소이며 6·25전쟁 때는 낙동강 최후 방어선이었다. 6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지역의 주요 교통수단은 나룻배였다. 그때는 의령에서 남지로 통학하는 학생들과 남지읍 5일장으로 가는 사람들이 창나리를 이용했다.

◆ 남지 개비리길 

[주말&여행] 경남 창녕 남지 개비리길, 낙동강·남강 두물머리, 봄이 그린 연둣빛 수채화
남지 개비리길. 물가의 벼랑길이고 누렁이가 조리쟁이 젖 먹이러 다닌 길이다. 창나리 억새전망대에서 영아지 주차장까지 2.7㎞다.
창나리의 서쪽 강변에는 마분산이 솟아 있다. 원래 창진산이라 했는데 곽재우 장군의 말 무덤이 있다고 해서 마분산이라 부른다. 산 너머 강변에는 창아지, 영아지 등의 마을이 있다. '아지'는 앞이 가려져 있는 동네나 앞마을을 가리킨단다. 창나루와 영아지를 연결하는 마분산 허리춤의 좁은 길을 '남지 개비리길'이라 부른다. '개비리'란 '물가'를 뜻하는 '개'와 '벼랑'을 뜻하는 '비리'가 합해진 말이다. 남지 개비리는 조선시대 고지도와 일제강점기 지형도에도 기록돼 있는 옛길로 2021년 명승으로 지정됐다. 출발점은 용산리 억새전망대와 영아지 주차장 두 곳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개비리길과 마분산 능선길을 연결해 원점 회귀하는 6.4㎞ 코스를 선호한다. 오늘 마분산 길은 통제되어 있다.

[주말&여행] 경남 창녕 남지 개비리길, 낙동강·남강 두물머리, 봄이 그린 연둣빛 수채화
산신령이 점지한 옥관자바위 층층나무와 강변에 넓은 밭을 가진 외딴 집, 그리고 풀을 뜯다 우는 검은 염소들이 한가롭다. 옥관자 바위 앞에 옹달샘 쉼터가 있다.
개비리길의 초입은 수양벚나무의 길이다. 꽃 진 자리마다 물방울 다이아 같은 열매들이 주렁주렁하다. 길은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넉넉하다. 꽃나무와 텃밭을 정갈히 가꾸어 놓은 멋쟁이 집 한 채를 지난다. 높이 솟구친 한 그루 미루나무와 사람들이 널브러지게 앉은 정자, 그리고 용산양수장을 지나야 비로소 본격적인 개비리길이 시작된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 좁은 길이 수십 미터 절벽 위 산모롱이를 따라 아슬아슬 이어진다. 저 앞에 마주 오는 아저씨의 등 뒤로 노랑나비가 팔랑팔랑 따라 온다. 아니네, 노란 리본이네. 저기 또 오리 떼처럼 다가오는 사람들 뒤로 노란 리본이 팔랑팔랑한다. 개비리길의 사람들은 세상을 내려다보는 별들처럼 눈을 깜빡이며 길을 주시한다.

개비리는 '개가 다닌 절벽'을 뜻하기도 한다. 옛날 영아지 마을 황씨 할아버지의 개 누렁이가 11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그중 한 마리가 눈에 띄게 조그마한 조리쟁이(못나고 작아 볼품이 없다는 뜻)였다. 조리쟁이는 젖먹이 경쟁에서 항상 밀렸다. 이를 가엾게 여긴 황씨 할아버지는 새끼들이 크자 10마리는 남지시장에 내다 팔았지만 조리쟁이는 집에 남겨 두었다. 어느 날 등(山) 너머 알개실로 시집간 할아버지의 딸이 다녀가면서 조리쟁이를 데려갔다. 며칠 후 딸은 깜짝 놀랐다. 친정 누렁이가 조리쟁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게 아닌가. 이후 누렁이는 하루에 한 번씩 꼭 조리쟁이에게 젖을 먹이고 갔다. 폭설이 내린 날에도 누렁이는 알개실 마을에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누렁이가 어떻게 왔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눈이 쌓일 수 없는 낙동강변의 절벽을 따라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높은 산을 넘는 대신 누렁이 길을 다니며 개비리라 했다 한다. 알개실은 창나리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그러니까 본래 개비리는 알개실과 영아지를 잇는 길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개비리 남단이 상당 부분 멸실되었고 최근 정비하는 과정에서 일부가 훼손되었다고 한다.

[주말&여행] 경남 창녕 남지 개비리길, 낙동강·남강 두물머리, 봄이 그린 연둣빛 수채화
정면으로 흘러오는 강은 남강, 오른쪽에서 흘러오는 강은 낙동강 본류다. 옛사람들은 두 강이 합류하는 지점을 기음강 또는 기강이라 불렀다. 강이 갈라진다는 의미다.
길 따라 보고 듣는다. 홍이장군의 붉은 돌 신발,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사유지임을 외치는 플랜카드들, 길가에 보일 듯 말 듯 피어난 제비꽃과 모래별꽃과 큰봄까치꽃, 산신령이 점지한 옥관자바위 층층나무, 강변에 넓은 밭을 가진 외딴 집과 풀 뜯다 우는 검은 염소들,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의 분홍 꽃들, 봄마다 도롱뇽이 알을 낳고 번식하는 옹달샘, 시집보내는 감나무, 여양진씨 재실인 회락재 터, 연리지 팽나무, 울창하고 어두컴컴한 대숲에서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와 웃음소리, 쉼터 정자에 옹송그리고 앉은 일단의 무리, 야생화 화단을 가진 테라스 쉼터, 소나무 재선충병에 걸려 죽은 나무를 꽁꽁 덮어놓은 더미들, 병아리처럼 우는 새들, 층층이 줄무늬를 드러낸 퇴적암 절벽,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 길 따라 강한 생명력을 가진 마삭줄은 끝없이 이어진다. 마삭줄은 상록수처럼 겨울에도 푸른 잎을 떨어내지 않고 나무나 바위틈 사이 자기 손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지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깎아지른 절벽과 울창한 숲속의 나뭇가지와 벼랑 끝 고목을 타고 뻗어나간다. 머지않아 바람개비를 닮은 하얀 꽃이 무더기로 피겠다.

길이 조금 넓어지더니 절벽 아래 한척 푸른 배가 보인다. 이곳이 창녕 남지 개비리길의 끝인 영아지 주차장이다. 화장실 옆 쉼터에 사람들 오글오글하고 둑 너머 밭에는 사람들이 바쁘다. "감자야 감자. 심는 건 아니고, 풀 뽑는 거야." 감자. 4월의 감자밭은 저런 모습이구나. 감자, 감자밭을 자꾸만 되뇌며 다시 개비리길로 들어선다. 5월에는 감자꽃도 피겠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창원방향으로 가다 남지IC에서 내린다. 남지톨게이트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직진, 남지입구오거리에서 12시 방향으로 나가 남지 읍내를 관통해 직진한다. 4.3㎞ 정도 가면 억새전망대가 있는 용산리 창진마을이다. 주차장은 넉넉하고 갓길 주차도 가능하다. 남지입구오거리에서 10시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낙동강유채축제장인 남지체육공원이다. 축제는 18일부터 20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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