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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과 책상 사이] 양육 방식과 학업 성적

2025-04-21
[밥상과 책상 사이] 양육 방식과 학업 성적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고3 학생 아버지가 전화했다. 3월 모의고사(서울시교육청 주관,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친 후 아이가 갑자기 이상해졌다며 상담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오랜 경험으로 그 이유를 다 안 들어도 아이가 왜 변했는지, 또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토요일 저녁에 엄마, 아빠랑 같이 만나기로 했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모의고사에 너무 민감하다. 심지어 상당수의 수험생은 모의고사가 주는 충격과 좌절감 때문에 생활의 활력과 의욕을 상실하고 방황한다.

많은 사람들이 3월 첫 모의고사 성적은 실제 수능을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신뢰도 높은 지표라고 생각한다. 이보다 잘못된 생각은 없다. 어느 시험이든 당해 연도 공부가 결정적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에 1, 2학년 때보다 몇 배를 더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면 모의고사는 정신과 육체를 고문하는 형틀로 고3 생활 전반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모의고사란 문자 그대로 실제 수능시험과 비슷한 형식과 내용으로 연습 삼아 치는 시험이다. 연습으로 치는 시험이라면 점수가 좋고 나쁨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일부 수험생과 학부모는 모의고사에 목숨을 거는 듯이 행동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매번 모의고사 성적이 나올 때마다 점수에 따른 지망 가능 대학의 배치 기준표가 나온다. 거기에 맞춰 상담도 하고 과목별 학습 전략을 수정하거나 새로 짜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점수가 잘 나오면 격려와 칭찬을 받지만, 그렇지 못하면 생산적인 조언보다는 질책과 추궁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험이 두려운 것이다.

심리학자 캐럴 드웩은 학습 동기에 관한 연구를 위해 초등학교 고학년생에게 몇 가지 문제를 풀게 했다. 처음에는 쉬운 문제를 주다가, 갑자기 어려운 문제를 주고는 실패를 경험한 학생들의 반응을 조사했다. 어떤 학생은 금방 좌절하며 자기 머리가 나쁘다는 식으로 비관적 태도를 보였다. 이런 학생은 문제 풀이가 잘 되고 성공을 경험하는 동안은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계속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실패로부터 눈을 돌리려고 엉뚱한 짓을 하기도 했다. 일부 학생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 학생들은 문제 풀이에 성공하지 못해도 어려운 문제와 부딪히는 걸 오히려 즐거워했다. 그들은 어려운 문제와 씨름하는 과정을 '도전'이나 '기회'라고 생각했다. 드웩은 이런 차이를 학생들의 '학습 목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성과 목적(performance goal)'을 가진 학생들은 문제 풀이가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문제를 맞힐 때는 행복하지만, 틀리면 좌절한다. 반면에 '학습 목적(learning goal)'을 가진 학생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문제 풀이에 매달렸다. '성과 목적'을 가진 학생들은 지능을 변하지 않는 실체로 보지만, '학습 목적'을 가진 학생들은 노력에 따라 지능도 향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사람은 어느 한쪽 이론만 전적으로 믿고 행동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어느 쪽에 좀 더 무게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학업 생산성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무수한 시험을 통해 '성과 목적'에 길들어 있다. 이렇게 된 데는 학부모의 영향이 크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부모님의 90% 이상은 부지불식간에 '성과 목적'에 따라 자녀를 양육했다. 자신이 어느 쪽인지 알아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시험을 치고 돌아온 아이에게 "시험 잘 쳤나? 몇 문제 틀렸나?" 이렇게 묻거나, 시험을 잘 치면 칭찬하며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고, 기대만큼 성적이 안 나올 경우 심하게 질책한다면 '성과 목적'에 기울어 있다. '학습 목적'에 중점을 두는 부모님은 시험 치고 온 아이에게 먼저 "수고했다. 오늘은 먹고 싶은 것 먹고 푹 쉬어라." 이렇게 말한다. 시험을 잘 쳤다면 "열심히 노력한 보람 있네, 수고했다"라고 말하고, 시험을 못 쳤다면 "속상하겠지만, 일단 좀 쉬고 어디가 부족한지 살펴봐, 차차 나아질 것이다. 내가 도와줄 일은 없나?"라고 말한다.

상담하러 온 학생에게 수능시험까지 남은 기간에 상전벽해의 대변화가 여러 차례 일어날 수 있음을 설명했다. 일주일 단위로 학습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성취감을 누적하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성적이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님께는 아이를 믿고 지켜보며 잘 먹고, 잘 잘 수 있게 도와주라고 당부했다. 부모의 양육 방식은 아이의 성적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에도 지대하게 영향을 미친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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