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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하상의 기업인 열전] 삼성가 이야기 〈19〉 ■ 이병철의 경영 15계명

2025-04-25

흔들림 없이 초연하게…목계지덕 실천한 진정한 리더

[홍하상의 기업인 열전] 삼성가 이야기 〈19〉 ■ 이병철의 경영 15계명
이병철 회장의 사원 면담. 삼성은 1958년부터 공채를 통해 사원을 뽑고 그들이 오늘날의 삼성을 만드는 데 공헌하게 했다.

中고전 장자 달생편에 나오는 우화
싸움을 걸어와도 미동조차 않는 닭
남의 위협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고
조급함도 없는 자세 본받으려 애써
품격 갖춘 리더가 일류기업 원동력


1. 행하는 자 이루고, 가는 자 닿는다

1939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창업하면서 시작된 이병철의 기업가로서의 일생은 1951년 삼성물산 설립, 1953년 제일제당, 1954년 제일모직 건립 등으로 이어지면서 본격적인 행보가 계속됐다. 그는 48년간 한국 경제사에 커다란 획을 그으며 연이어 삼성중공업, 삼성전자, 삼성전기, 동방생명, 중앙일보, 동양방송, 신라호텔 등 23개의 기업군을 이루었다. 그의 생애는 끊임없이 행하는 용기와 실천의 삶이었고 결국은 모든 기업군을 국내 제일의 위치에 올려다 놓는 '가는 자 닿는' 실천의 일생이었다.

2. 신용을 금쪽같이 지켜라

이병철은 광복 직후 홍콩 찬넬상회로부터 면실박을 수출한 대금 3만불을 6·25 직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평소에 신용을 잘 지켰기 때문이며, 6·25 때 알거지가 된 이병철이 재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그의 일생은 신용을 목숨처럼 지키는 것으로 일관했다.

[홍하상의 기업인 열전] 삼성가 이야기 〈19〉 ■ 이병철의 경영 15계명
제일모직 기숙사 외관. 이병철의 기업가로서의 일생은 1951년 삼성물산, 53년 제일제당, 54년 제일모직 건립 등으로 이어지며 본격 행보가 계속됐다.

3. 사람을 믿고 맡겨라

삼성은 1958년부터 공채를 통해 사원을 뽑고 그들이 오늘날의 삼성을 만드는 데 공헌하게 했다. 한 번 뽑은 사람은 믿고 맡긴다는 이병철의 인재관에 따라 강진구 삼성전자 부회장, 김광호 삼성전자 사장,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 등 현재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의 60%는 모두 이병철이 1970년대에 공채했던 인물들이다. 이들 전문 경영인의 자율경영은 삼성그룹이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4. 업의 개념을 알아라

이병철은 동방생명을 인수하고 나서 보험은 모집인이 좌지우지하며 모집인이 보험업의 전부라고 말했다. 보험업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단적으로 지적한 말이다. 이처럼 이병철은 업의 개념을 매우 중시했다. 또한 이병철은 호텔업이 근본적으로 부동산 업종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는 미국의 맥도날드 햄버거가 햄버거를 팔아서 세계적인 기업이 된 것이 아니라, 매장 개설 시 장래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만한 예상지를 잘 골랐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5. 판단은 신중하게, 결정은 신속하게

반도체 진출이 대표적인 케이스로 반도체에 진출하기 전 이병철은 김광호 삼성전자 상무에게 반도체 시장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케 하고, 그것을 수십 번 읽는 한편 본인도 별도의 채널을 통해 반도체에 대해 1년6개월 동안 치밀하게 연구했다. 그 후 단 하룻밤 만에 삼성그룹 전체의 사운을 걸고 반도체 진출을 선언한 것은 신중한 판단과 신속한 결정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이다.

6. 근검절약을 솔선수범하라

이병철은 국제전화를 걸기 전에 미리 메모를 작성해 상대에게 간단명료하게 메시지를 알려줌으로써 국제전화요금을 아낄 정도로 근검절약했다. 또 골프를 칠 때의 티도 다 깨지고 망가질 때까지 쓰고 또 썼다. 이병철은 본인 자신이 소식이기도 했지만 음식을 남기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낭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용인하지 않았다. 예컨대 일본의 오쿠라 호텔에 투숙할 경우 주로 505호실을 사용했다. 그 방은 평균 수준의 고객들이 이용하는 방이다.

[홍하상의 기업인 열전] 삼성가 이야기 〈19〉 ■ 이병철의 경영 15계명
이병철은 평생 자신의 집 거실에 나무닭인 목계를 걸어놓고 그걸 통해 자신의 마음을 경계했다. 〈삼성그룹 제공〉

7. 메모광이 되라

이병철의 일상은 메모로 시작해서 메모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전 6시에 일어나서 목욕하고 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간밤에 생각한 내용을 모두 메모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메모에는 그날 하루의 일과에서부터 상을 주어야 할 사람, 혼을 내야 할 사람 등이 적혀 있고, 사장들과의 면담 시간도 메모에 의해 15분, 20분 등으로 정확하게 실천했다. 심지어는 사장을 혼낼 때도 메모를 보고 혼을 내었다. 사업에 착수할 때 검토해야 할 90항목 같은 것은 그의 평소의 메모가 이루어낸 결과였다.

8. 세심하게 일하라

이병철은 삼성본관 건물 신축 시 대리석 타일의 색상에서부터 기둥과 기둥 간의 간격 등에 이르기까지 무려 150개 항목의 지침을 내렸다. 신라호텔을 지을 때도 우동집 주방장을 자신의 일본 단골 우동집에 보내 기술을 배워오게 했다. 제일모직에서 와이셔츠를 생산할 때엔 스스로 전 세계 명품 와이셔츠 150종을 매일 한 가지씩 입어보고 그중에서 가장 적합한 것을 내려 보내 생산토록 했다.

9. 신상필벌을 정확하게 지켜라

일을 잘한 사원에게는 남몰래 보약을 보내줄 정도로 부하를 아꼈다. 그러나 일을 잘못했을 때에는 반드시 그 책임을 묻고 좌천시켰다.

10. 전문가의 말을 경청하라

이병철은 본래 과묵한 성격이다. 그러나 남의 말은 신중하게 들었다. 그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나름대로 취할 장점과 단점을 면밀히 계산했다. 특히 일본의 경영자, 대학교수, 고위 언론인 등과 많이 접촉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를 즐겼다.

11. 사원들을 일류로 대접하라

이병철은 1970년에 월급을 정하는 원칙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정했다. 첫째, 물가를 반영해 생활이 안정되도록 최소한의 생계비는 되어야 한다. 둘째, 타사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12. 부정부패를 엄히 다스려라

삼성에도 한때 부정이 있었다. 삼성의 직원들 중에는 하도급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병철은 그러한 불의를 용서하지 않았다. 뇌물의 수수는 기업을 좀먹는 암이자 품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3. 사원교육은 회사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병철 자신이 가끔 비유했던 "세 사람이 모이면 문수보살의 지혜가 나온다"는 말처럼, 이병철은 전원 경영을 중시했다. 전원 경영은 사내의 중지를 모으기 위한 것이었다. 물건을 만들기 전에 사람을 만들어라, 적재적소에서 개성을 살리라는 것은 인재 배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병철의 인재관이었다.

14. 목계의 마음을 가져라

이병철은 평생 자신의 집 거실에 나무닭인 목계를 걸어놓고 그걸 통해 자신의 마음을 경계했다. 목계는 나무닭으로 중국의 고전 장자(莊子)의 달생(達生)편에 나오는 우화로, 목계는 저자거리의 싸움닭을 만나도 일일이 대거리하지 않고 초연한 닭이었다. 그 자신도 목계처럼 시정잡배들에게 응수하지 않고 초연한 자세를 유지했다.

15. 정상에 올랐을 때 변신하라

삼성은 1938년 삼성상회에서 1950년대는 제당과 모직, 1960년대는 비료와 보험, 1970년대는 전자, 석유, 화학, 중공업, 조선, 건설, 통신, 국토개발, 1980년대는 반도체, 유전공학, 컴퓨터, 항공산업, 소프트웨어 등 첨단산업에 진출했다. 그는 그 모든 사업이 완전히 정상에 올랐을 때 늘 새로운 변신을 추구했다.  홍하상 작가·전경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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