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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때 담임이 연기자의 길 권유
고민 거듭하다 예고 진학 무용수로
韓·아시아 예술가들과 공동작업
과정 힘들었지만 '안무는 믿음' 재확인
지역에 숨은 안무가 발굴해 지원
상생 프로젝트 통해 균등한 기회 제공
◆최연소 국립현대무용단 감독
김성용 감독을 소개하는 말에는 '최연소' '최초 수상' 등의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1997년 20세에 국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동아무용콩쿠르' 금상을 최연소로 수상했다. 일본 '나고야 국제 현대무용콩쿠르'에서도 한국인 최초로 입상하는 등 일찌감치 두각을 드러냈다. 2023년엔 40대 최연소 국립현대무용단 감독에 임명되는 영예까지 얻었다.
빡빡 깎은 민머리는 그를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다. 벌써 10여 년 이상 '빡빡이'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카리스마' 가득한 그의 민머리를 닮기 위해서 머리를 짧게 미는 젊은 무용수들이 나왔을 정도다. 그는 어떡하다 민머리 전파자가 된 걸까.
"젊을 때 몸이 왜소해서 고민이 많았어요. 사실 그때는 찰랑거리는 긴 머리였는데, 사람들에게 좀 더 단단해 보이는 이미지를 주고 싶어서 과감하게 머리카락을 밀었죠. 25살부터 줄곧 빡빡이 머리를 고집했는데, 간혹 비행기를 타면 '스님'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계셔요."
무용에 처음 입문한 과정은 어땠을까. 배드민턴 선수로 전국소년체전에 출전하고, 육상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그에게 중3 때 담임은 "끼가 있어 보이니 연기로 방향을 잡아보는 건 어때"라고 제안했다. 그때부터 심각하게 연기자의 길을 고민했다는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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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김성용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은 재임 중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로 '지역과의 상생'을 제시했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
◆무용은 가장 진솔한 표현 도구
김 감독에게 '춤'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가질까. "무용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라 전제한 김 감독은 "춤은 가장 진솔한 표현도구이자, 무엇보다 솔직하게 표현되어야 하는 예술"이라는 무용철학을 털어놓았다.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것들을 움직임으로 구현해내는 그에게 안무작업은 늘 새로움 속에서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가는 도전의 과정인 것이다.
긴 세월에 걸쳐 터득한 김 감독의 무용관은 그의 독특한 무용 연습법인 '프로세스 인잇'으로 이어졌다. 몸의 감각과 반응을 보여주는 독특한 훈련방식인데, 창작자의 내부에서 끓어 오르는 예술적 영감을 가시적이고 창의적인 움직임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프로세스 인잇'은 지난해와 올해 실제 무대를 통해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다.
프로세스 인잇은 한국과 아시아 지역 예술가들이 진행한 공동작업으로 발전했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무용수들이 '단순함 속의 복잡성' '반복 속의 깊이' '무의식과 의식의 공존' 등 몇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함께 작업에 들어갔다. 작업환경과 추구하는 예술세계가 각각 다른 아시아의 여러 예술가들이 춤을 통해 부딪히고, 깨지고, 소통하면서 한 편의 결과물을 만들었다.
"안무가 입장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쎈 무용수를 한자리에 모으고, 작업하는 과정 자체가 그리 쉬운 과정은 아니었어요. 정말 너무 힘들었지요. 화를 내고, 삐지고를 반복하다가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풀이 죽기도 했지만 그 모든 과정이 지난 뒤 얻은 것은 결국 '안무는 믿음'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어요. 무용수가 안무가를 믿어 주면 뭔가 하나씩 만들어지는 과정이 열리고, 이를 통해서 서로가 훨씬 끈끈해지면서 진정한 작업물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지역상생, 선택이 아닌 필연
2023년 국립현대무용단 감독에 취임한 그는 다양한 사업과 아이디어를 시험 중이다. 댄스하우스 개설, 청년교육단원 교육 등 여러 가지 사업 중에서도 가장 주력한 것은 '지역과의 상생' 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지역의 숨은 창작자를 발굴하고, 그들이 자생적 창작 환경을 구축하도록 돕는 프로젝트다. 전국을 대상으로 안무가를 공모하고, 선정된 작품은 '국립현대무용단'의 제작 시스템을 통해 작품으로 완성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실력있는 지역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지역예술단에게도 국립단체 수준의 지원과 관심을 쏟는다는 것.
"솔직히 지역이나 서울이나 세금은 똑같이 내는데 지역은 국립예술단이 가진 문화와 시스템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저희가 운영하는 '지역상생 프로젝트'는 단순히 돈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도 똑같이 국립현대무용단의 제작 프로덕션을 체험할 수 있도록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다르죠. '서울현대무용단'이 아니고, '국립현대무용단'이니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할까요?"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수도권은 갈수록 비대해지고, 반대로 지역은 침체를 거듭하고 있다.
"솔직히 '지역소멸'이라는 말을 서울에 계신 분들은 알지 못합니다.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지방 예술단의 실태를 속속들이 알지도 못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뿐이지요. 저는 대구에서 살았고, 근무했기 때문에 더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아무리 열심히 하고, 잘하더라도 지역의 예술가들이 제대로 존립하지 못하면 공허하지 않을까요?"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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