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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경의 사람학교] 사람을 배우고, 사람을 세우다

2025-05-06
[박혜경의 사람학교] 사람을 배우고, 사람을 세우다
한동대 부총장
"요즘은 착하게 살면 알고리즘이 밀어주지 않아요."

한 대학생이 SNS에 남긴 이 짧은 문장은 묘하게 낯설고 아프다. 우리가 믿어온 가치와 지금의 현실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 학계는 정의와 거짓이 모호해지고, 가치와 판단의 기준이 제각각인 시대가 올 것을 예측했다. '설마 그런 날이 올까?' 싶었지만, 우리는 지금 그 변화의 정점에 살고 있다. 거대한 담론이나 진리는 더 이상 환영받지 않고, 다양한 해석과 목소리가 경쟁하듯 공존한다. 이는 단지 시대의 흐름이 아니라, 사람들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바뀌었음을 뜻한다.

이런 변화는 일상의 곳곳에서 감지된다. 최근 '나눔이 곧 리더십의 출발점'이라는 주제로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예전 같으면 반짝이며 이어졌을 질문들이 이제는 조심스럽고 현실적인 반응으로 돌아온다. "좋은 말씀이지만, 현실은 달라요." 그 말속에는 경쟁과 효율의 논리에 밀려 점점 위축되는 '인간다움'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과거에는 '좋은 건 맞다'며 인정하던 분위기가, 이제는 '그게 실현 가능하냐'는 냉소적인 판단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는 지금 변동(Volatile), 불확실(Uncertain), 복잡(Complex), 모호함(Ambiguous)이 일상화된 뷰카(VUCA) 시대를 살고 있다. 기술과 정보는 고도화되었지만, 사람은 점점 고립되고 있다. '각자도생'은 생존을 위한 전략이 되었고, 이는 '적자생존'보다 훨씬 더 단절된 방식으로 나타난다. 살아남기 위해선 나만의 전략이 필요하고, 타인의 사정은 뒷전이 되는 현실이다. 이제는 법과 윤리조차 충돌하는 장면이 낯설지 않다. 정의의 기준은 흐릿해지고, 허위 정보와 조작된 현실이 진실을 가장한 채 삶을 지배한다. 디지털 감시, 가짜 뉴스, 현실보다 강력한 가상의 권력이 이미 일상을 재편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상 속에 꺼지지 않는 불씨는 분명 존재한다. 팬데믹으로 공연이 멈춘 어느 날, 병원 외벽 아래에서 조용히 바이올린을 켜던 청년 음악가는 "그냥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휴업 중에도 동네 어르신들께 도시락을 나눈 청년 창업가, 반찬을 싸서 함께 나눈 이주여성 커뮤니티는 "작은 정성이 어른들을 웃게 한다면 우리도 행복하다"고 전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쓰러진 사람을 응급처치로 살려낸 경찰관은 "도착하기 전에 먼저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던 분 덕분에 살았다"며 공을 돌렸다.

이렇게 사람의 온기는 여전히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작고 따뜻한 행동들이 삶의 균열을 메우고, 사람 사이의 온도를 다시 데운다. 기술은 인간이 하던 많은 일을 대신하며 존재의 가치를 다시 묻게 한다. 기술이 '이해'를 넘어 '공감'에 가까워진다 해도, 그 안에는 사람의 온기가 없다. 진심을 담은 손편지 한 장, 눈을 마주하며 건네는 한마디 위로. 이런 온기는 오직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영역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가. 이 질문은 가정과 교실, 공동체와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던져지고, 대화를 통해 깊어져야 한다. 청년의 말처럼 착하게 산다고 해서 알고리즘이 밀어주지는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결국 사람이 살린다. 모호한 뷰카 시대의 거센 물살 속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 가치를 찾아 품고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감당해야 할 가장 사람다운 일이자, 함께 만들어가야 할 진짜 미래일지 모른다.


박혜경 한동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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