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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경북 칠곡군 약목면 남계지

2025-05-09 08:13

休~호젓한 둘레길 걷고, 벽화거리서 감동받고

[주말&여행] 경북 칠곡군 약목면 남계지

큰 바위산 꼭대기는 전망대로 저수지일대가 모두 조망된다. 남계 저수지는 맑고 풍부한 물 덕에 다양한 어종들이 살고 있어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 장소라고 한다.

뺙 삐약 뺙. 아이가 걸을 때마다 귀여운 소리가 난다. 아장 걷는 아이가 대견스러워, 온몸으로 떠받친 대지가 부러 내는 소리 같다. 젊은 부부는 아이는 남계지 조형 간판 앞에서 이리 서고 저리 서며 사진을 찍는다. 한 그루 버드나무 그림자가 그들의 발 곁에서 살랑 어정대고 부드럽고 맑은 물위로 애교스런 개구리밥이 몰려든다. 사랑스런, 남계지다.

일제강점기때 축조된 농업용 저수지

출렁다리·쉼터 갖춘 수변공원 조성

남계리는 나선정벌 신유 장군 출생지

두만천변 '칠곡 가시나들' 벽화거리

80넘은 할머니들 지은 시 벽에 가득

[주말&여행] 경북 칠곡군 약목면 남계지

남계지는 일제강점기 때 축조된 농업용 저수지다. 최근에 둘레길을 만들고 출렁다리와 정자, 쉼터 등을 조성해 알음알음 사람들이 찾아드는 수변공원이 됐다.

◆ 남계리 남계지

남계지는 일제강점기 때 축조된 농업용 저수지다. 1934년 11월 5일 착공, 1936년 3월 31일 준공이다. 최근에 둘레길을 만들고 출렁다리와 정자, 쉼터 등을 조성해 알음알음 사람들이 찾아드는 수변공원이 됐다. 남계지 출렁다리는 저수지의 남서 모서리에 슬쩍 걸쳐져 있다. 길이 60m, 폭 2.3m, 주탑 높이 20m의 작은 규모로 물가 갈대밭 습지를 가로지르는 데크 교량과 정자 쉼터가 있는 우회길이 이어져 아기자기한 정취가 있다. 출렁다리는 두 개의 인공 바위산 가운데에 도착한다. 바위산에서 폭포가 떨어진다. 따뜻한 햇빛 속에 떨어지는 폭포수는 주변 대기를 금세 차갑게 만든다.

큰 바위산 꼭대기는 전망대다. 출렁다리와, 정자쉼터와, 폭포수의 정수리와, 수면에 옹기종기 모인 귀여운 개구리밥과, 바람이 불적마다 꽃잎을 떨구고 있는 몇 그루이팝나무의 우듬지에서부터 먼먼 산들과 가까운 마을까지 저수지일대가 모두 조망된다. 남계 저수지는 맑고 풍부한 물 덕에 다양한 어종들이 살고 있어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 장소라고 한다. 오늘 낚시꾼은 둘이다. 한 사람은 마치 방공호 같은 우산에 몸을 오그리고 있다. 열 개가 넘는 낚싯대를 드리워놓았지만 어쩐지 물고기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한 사람은 여기에서 저기로, 낚싯대 하나를 쥐고는 줄곧 움직인다. 물고기를 잡고 싶다는 생생한 초조와 성급함이 느껴져 갑자기 정다운 애정이 솟는다.

이팝나무 아래를 지나 키 큰 수목들이 숲을 이룬 자그마한 동산으로 향한다. 어디선가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의 짧고 새된 목소리가 들린다. 바로 곁에 약목고등학교가 있다. 아무도 보이지는 않지만 몇 군데 창이 열려 있다. 견고하고 포만한 안전으로부터 새어나온 높은 음성은 부러운 것이다. 장난감 같은 포크 레인이 덩그러니 서있는 동산의 기울어진 가장자리를 지나 숲으로 든다. 야자매트가 깔린 마루금 따라 소나무가 성하고 가장자리에는 활엽의 관목과 교목이 무성하다. 숲에는 벤치가 넉넉하고 운동기구도 부족함 모르게 자리해 있다. 청명한 그늘 속에 한 사람이 미동 없이 앉았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갑자기 사람을 보면 가슴이 쿵쿵거리는데, 이곳에서 내 심박은 변화가 없다.

[주말&여행] 경북 칠곡군 약목면 남계지

물가 갈대밭 습지를 가로지르는 데크 교량과 정자 쉼터, 출렁다리, 바위산폭포, 그리고 동산숲이 이어져 아기자기한 정취가 있다.

동산의 짧은 숲길을 지나 저수지 둑길에 내려선다. 햇살이 쨍하다. 길가에는 노란 애기똥풀과 보랏빛 엉겅퀴가 흔하다. 아주 오랜만에 엉겅퀴를 본 것 같은 느낌에 조금 들뜬다. 지나온 길과 반영이 아름답다. 물새 혼자 큰 브이를 그리며 노닌다. 봉우리가 삼각형으로 솟은 저 산은 비룡산이다. 봉우리가 뾰족해 필봉이라고도 부른다. 비룡산 북쪽계곡에서 시작된 두만천이 약목면의 가운데를 흐르는데 면의 북쪽에서 경호천과 만나 낙동강으로 간다. 남계(南溪)는 두만천의 남쪽에 있다는 의미다. 남계지 외에도 두만지, 호암지, 용화지 등 저수지가 3개나 더 있다. 조선 효종 때 나선정벌(羅禪征伐)에 참여해 큰 공을 세운 신유(申瀏) 장군이 남계리 출신이다. 두만천 최상류의 두만지 앞에 그의 사당이 있다. 수년 된 기억 속에 두만지의 모습은 어렴풋하지만 사당과 사람들의 휴식은 또렷하다.

둥그스름하게 이어지는 둑길이 남계지 북서 모서리의 정자에 닿는다. 정자의 이름은 '여래실정'이다. 남계리는 고려 때 사찰이 많았던 마을이다. 지금도 탑걸, 중탑걸, 두만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두만리, 상로전이 있었다는 상동골 등의 이름이 남아 있다. 여래실은 남계리의 중심 마을로 옛날 마을에 절터와 석가여래상이 있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정자 맞은편에 둑을 오르는 계단은 용화지의 것이다. 용화지는 1927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남계지보다 오래된 못이다. 용화지 물속에 미륵당 터가 있다고 한다. 둑의 좁은 오솔길에 들어서지는 못하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자그마한 포도밭이 울타리 하나 없는 무방비의 아름다움으로 펼쳐져 있고 푸른 남계지 위 흰 구름이 행복해 보인다.

[주말&여행] 경북 칠곡군 약목면 남계지

할머니들은 교복에 대한 로망이 있었단다. 교복 입고 사진 찍은 기억이 가장 좋았다고. 교복 입은 벽화 속 할머니들도 함박웃음이다.

◆ 두만천변 '칠곡가시나들' 벽화거리

남계리 두만천변에는 '칠곡 가시나들' 벽화거리가 있다. 2019년 개봉한 김재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을 주제로 조성된 곳이다. 이름조차 쓰지 못해 한이 쌓인 할머니들이 80이 넘어 한글을 배우고 공부하며 쓴 시들이 벽에 가득하다. 할머니들은 10대 때 이곳으로 시집을 왔다고 한다. 허리 숙여 들판에서 일을 하다보면 저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버스가 왔다. 그 버스에서 교복 입은 여학생이 내리면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고 한다. 아, 나도 학교 가고 싶어요. 나도 선생님이 필요해요. 나도 교복입고 싶어요. 그렇게 긴 세월이 흘렀다.

2008년, 칠곡군 평생교육 사업의 일환인 '칠곡교육문화회관 찾아가는 성인 문해교육사업'이 시작됐다. 2015년에는 약목면 복성리에 배움학교가 문을 열었다. 마을에 학교가 생겼지만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손주들로부터 편지가 도착한다. 유치원에서 막 한글을 배운 손주가 삐뚤삐뚤 쓴 '할머니 사랑해요.' 그 편지를 받은 할머니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사랑하는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꼭 한번 편지를 보내고 싶다고. 그렇게 학교의 문을 두드렸고 5년간 공부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쓰기 숙제를 받은 날, 처음으로 우체국의 문을 열고 들어갈 생각을 하니 아침부터 가슴에서 쿵쿵 북소리가 났다고 한다. '오뽀 생각 동생 생각난다/ 생각하니 누무리 난다/ 보고싶다.' '사랑이라카이 부끄럽따/ 내 사랑도 모르고 사라따/ 절을때는 쪼매 사랑해조대/ 그래도 뽀뽀는 안해밧다.' 할머니들 시를 읽으니 내 가슴에서 쿵쿵 북소리가 난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왜관IC로 나가 오른쪽 4번국도 왜관방향으로 간다. 매원사거리에서 좌회전해 직진, 제2왜관교 건너자마자 김천방향으로 우회전해 직진, 남계삼거리에서 왼쪽 길 약목로로 들어가면 곧바로 왼편에 남계저수지 둑이 보인다. 직진하다 SK주유소 앞에서 좌회전, 소미할매칼국수 가게 옆으로 좌회전해 들어가면 출렁다리 앞에 주차장이 있다. 약목로로 조금 더 직진해 남계교를 건너면 천변에 '칠곡가시나들' 벽화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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