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 (에릭 베스나드 감독·2021·프랑스)
세상을 바꾼 레스토랑
![[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에릭 베스나드 감독·2021·프랑스)](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5/news-p.v1.20250505.41914868b05345b19742e0926fc30ff4_P1.jpg)
에릭 베스나드 감독의 영화 '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 스틸컷. <다날엔터테인먼트 제공>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종종 음식 프로에서 멈추게 된다. 영화를 찾다가도 음식 영화를 보면 바로 선택하기도 한다. 음식이란 그렇게 눈길을 끄는 힘이 있다. 우리는 매일 뭔가를 먹어야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는 음식 영화가 꽤 많다. 그중에서도 '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은 조금 특별하다. 제목이 말해주듯 레스토랑이 시작된 계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18세기 말, 샹포르 공작의 요리사 망스롱은 새로운 요리를 내놓았단 이유로 해고된다. 맛있는 음식이지만, 재료가 감자이기에 초대 손님들에게 조롱거리가 된다. 당시 감자를 비롯한 뿌리 식물은 돼지나 먹는 것으로 여겨졌다. 쫓겨난 망스롱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작은 주막에서 지내게 되는데, 의문의 여인이 나타나 요리를 가르쳐달라고 한다. 때는 바야흐로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우여곡절 끝에 망스롱은 귀족뿐 아니라 누구나 와서 식사할 수 있는 레스토랑을 열게 된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인 것이다.
며칠 뒤 바스티유가 함락됐다는 엔딩 자막이 인상적이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 음식 혁명이 먼저 있었다는 이야기다. 근사한 요리와 아름다운 풍경은 힐링 영화로 손색이 없다. 거기에 시대적 배경이 더해져 영화의 매력은 배가된다. 세대 간의 인식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도 흥미롭다. 요리사 망스롱의 아들은 요리보다 책 읽기를 더 좋아하는 청년이다. 공작이 자신을 다시 고용할 것이란 기대로 살아가는 망스롱에게 아들이 말한다. “아버지는 자유인인데 왜 스스로 하인이 되려고 하세요?" 기성세대인 망스롱은 아들의 말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서서히 시대의 변화에 눈뜨게 된다. 신비로운 여인 루이즈에게 요리를 가르치다 사랑에 빠진 그는, 드디어 요리가 귀족만의 것이 아님을 선언하게 된다.
얼마 전, 영화감독이 쓴 음식 에세이를 재미있게 읽었다. '파니 핑크'(1994)의 도리스 되리 감독은 '미각의 번역'이란 책에서 “음식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삶의 감각을 배웠다"고 썼다. 음식은 단순한 음식 이상이라는 거다. 사회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빌려 “부엌은 문명의 길을 탐구할 수 있는 소우주"라는 말까지 한다. 이쯤 되면 “대충 한 끼 때우자"란 말은 금기어라 하겠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 음식의 혁명이 있었다는 건 대담한 발상이다. 음식, 아니 의식의 혁명이 먼저 있었다는 건 맞는 말이겠다. 실제로는 혁명 후에 실업자가 된 궁정요리사들이 대중에게 전문 요리를 제공한 것이 레스토랑의 시작이라 한다. 레스토랑의 어원은 프랑스어로 레스토레(restaurer), '회복시키다'라는 뜻이다. 육체와 정신이 따로가 아니라는 말로 들린다. 세상살이는 팍팍하고, 이래저래 고단한 시기다. 맛있는 음식으로, 좋은 영화로,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야 할 때다. 한 끼를 잘 먹으면 하루를 잘 살고, 하루를 잘 살면 일생을 잘 사는 것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