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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혁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 곽재혁 신경과 원장 |
반면, 한국 정치권에서는 정반대의 장면이 연출되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원 투표로 대선 후보에 선출된 김문수 후보를 한덕수 후보로 교체하려 했다. 이는 특정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는 인물을 대선 후보로 밀어붙여, 이후 당권까지 장악하려는 시도로 해석됐다. 하지만 이 시도는 당원들의 강한 반발로 무산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당원들이 더 높은 지지율을 가진 후보를 마다한 것이 아니라 '절차의 정당성'을 문제 삼았다는 데 있다. 과정이 정당하지 않으면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이는 정치뿐 아니라 의료 정책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원칙이다.
올해 3월, 교육부 부총리는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현장에 복귀하지 않고 있다. 이들의 불신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정부가 보여준 정책 결정 방식의 문제이다. 실제로 의대 정원 2천명 증원 결정은 총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단 한 시간 남짓한 국무회의를 거친 뒤 발표됐다. 국정조사를 통해 이 과정이 졸속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의료 정책은 선거를 앞두고 단기 효과를 노리는 정치 전략이 아니라, 수년 혹은 수십 년을 내다보고 신중히 설계되어야 할 영역이다. 잘못 설계된 정책은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낳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2년 시행된 '분만 포괄수가제'다. 보건복지부는 분만 진료를 묶음 방식으로 바꾸고, 수가를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책정했다. 당시에는 산모들이 저렴하게 분만할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됐지만, 시간이 흐르자 산부인과 병원들은 경영 압박에 시달렸고 전국 곳곳에서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은 분만 가능한 병원이 부족해, 임산부들이 진료 받을 곳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산모를 위한다던 정책이 오히려 산모를 위험에 빠뜨린 셈이다. 이 정책을 주도했던 박민수 당시 복지부 과장은 현재 차관으로 승진해 여전히 잘못된 의료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금의 의료 사태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환자만이 아니다. 현장을 떠난 의대생과 전공의들 역시 고통받고 있다. 이들도 병원과 대학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들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다.
해결의 열쇠는 신뢰 회복에 있다. 다행히 이번 대선에서 여야 후보 모두 박민수 차관의 문책과 함께 의료 정책 결정 구조의 개선을 약속했다. 이는 출발점일 뿐이다. 의료 정책이 더 이상 정치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 정책은 협의와 전문성, 그리고 무엇보다 정당한 절차를 바탕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정치든 의료든, 정당한 방식만이 정당한 결과를 만든다. 책임지는 자리에 선 이들은 진심과 상식, 그리고 신뢰 위에 정책을 세워야 한다. 그것만이 무너진 의료를 되살리고,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오는 6월, 대한민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맞는다. 그가 누구든, 권력을 손에 쥐었다는 미소보다 교황처럼 책임의 무게를 먼저 느껴야 한다. 길어진 의료대란을 끝내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책의 첫걸음을 내딛길 바란다.
곽재혁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 곽재혁 신경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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