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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의 시와 함께] 최현우 '주인공'

202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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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 시인


기껏해야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영원이란

퇴근하고 돌아온 식탁에서

빵과 고기를 구워먹으며

오늘의 모욕과 내일의 다짐을 주고받거나

다 써버린 고춧가루와 소금과 다진 마늘을 걱정하면서

사랑이 먼저 씻는 동안

건조대의 마르지 않은 옷깃들을 손가락으로 비비며

우중충한 창밖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면서

토라져서 등 돌린 그림자에

몰래 뺨을 대고

미안해 잘못했어,

조곤조곤 속삭이거나 하는 일들 최현우 '주인공'


아주 느리게 일어나는 비극은 무심하게 반복되는 일과 속에 얇고 희미하게 번져 있어서 종종 망각되곤 한다. 단번의 절연보다 긴 시간 동안 조금씩 뜸해지다 마침내 소식이 끊긴 상실이 그렇고, 내리치듯 새겨지는 흉터보다 일생을 두고 주름으로 파이는 상처가 그렇고, 매일의 생활이 저 끝에 세워둔 최후가 그렇다.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공허는 그 진실이 잠시 찌르듯 생을 파고들었기 때문. 그러나 그것은 또한 아주 느리게 일어나는 기적이기도 해서, 식사가 끝나고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후회와 반성과 고백을 숭고함으로 채워놓기도 한다. 그때, 시인은 살아가는 일과 사라지는 일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전부를 가져간 주인공의 전모로서 말이다.
신용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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