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카페 등장, 사라진 외상
문인은 예전처럼 '대책 없는'
외로운 모습 드러내지 못해
다만 작은 카페 구석 차지해
단골 면모 은밀히 유지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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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석 시인 |
내가 사는 가창면 소재지 인근에 부쩍 카페들이 늘어난다. 휴일 아침에 내다보면 대도시를 빠져나가는 차들이 큰길에 아주 많이 밀리는데, 그들이 어딜 가는지 궁금하다. 가까운 시골로 가보니, 대개 거대 카페에 모여서 오글거린다. 한국 전체가 카페화(?)하는 추세에서 이 지역 역시 비켜설 수 없나 보다.
나도 슬슬 카페족이 되어가는 게 아닌가 여겨질 정도다. 자기 고립의 꿈을 카페를 이용하여 해결한다고 여기는 시대에 편승하는 걸까? 기실 '자기 고립'을 탐할 수 있는 곳은 세상에 널려 있다. 산사의 방 한 칸을 얻거나 산골의 빈방을 빌리는 걸 우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곳이 조용해서 공부하기에, 또는 글쓰기에 좋은 환경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기 쉽지만, 어지간히 마음 다스리기 수련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걸 유지하기가 어렵다. 주변의 기에 눌려서 오히려 마음을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자연환경이 좋으니, 늘 방문을 열어놓고 바깥 경치만 내다보거나, 비 오고, 바람 부는 자연의 현란한 변화에 눈과 귀가 열리게 마련이다. 너무 조용하여 '꽃 피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 되기도 한다. 자연의 그 광채와 변화무쌍을 두고 눈과 귀를 막고 방 안에서 오롯이 작업에 몰두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보다는 집 가까이에서 조용한 곳을 찾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일상 속의 산사'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곳. 비교적 작은 카페가 그런 곳이다. 내가 조용한 카페를 찾는 건, 새로운 환경 속에 자신을 놓아봄으로써 생각을 가다듬고 작업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일까? 말하자면 늘 고여있거나 익숙한 일상에 지친 내게 집 안의 거실과 서재와는 사뭇 다른 카페는 내가 새롭게 선택한 '은밀한 생각의 발전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카페 문학
별나게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오전은 비교적 사람이 적어 조용한 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데, 둘러보면 구석구석에 휴대용 컴퓨터를 켜놓고, 무언가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이들이 꽤 있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는 이들도 있다.
'카페 시대'의 극단적인 모습이지만, 카페가 일상화하다시피 되니, 책을 읽고, 작가가 작품을 쓰고 매만질 수 있는 공간의 확산 욕구가 지펴지는 모양이다. 카페에서 책을 읽고 쓰는 인구의 증가에 편승해 문학과 예술을 수용하는 '문학 테마 바'가 기획되기도 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카페 공간은 프랑스의 생제르맹데프레 같은 곳이다. 17세기부터 작가와 화가들이 모여들었던 장소로, 이 거리는 고풍스러운 카페와 갤러리로 예술과 천재들이 함께 호흡했던 역사가 스며들어 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같은 문인·철학자들은 이곳에 있는 카페에서 사유하고 논의하며 사상을 확립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은 오늘날에도 많은 예술인들과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게 만드는 매력을 발산한다.
17세기 후반에서 19세기까지 유럽의 카페들은 문인과 사상가들의 담론장이었다. 헤밍웨이는 많은 작품들을 파리의 카페에서 썼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유명한 소설 '백년의 고독'에는 당시 카페에서 사귀고 갈등을 일으키는 장면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카페 문화도 유명하다. 카프카는 주로 카페에서 글을 썼다. 18세기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지식의 교류는 물론 작가들과 언론인들의 사랑방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때가 있었다. 김병익의 '한국문단사'를 보면 문단 초기의 사랑방은 주로 다방이 그 구실을 했다. 문인들은 다방에서 문학을 토론하고 작품을 나누었다. 6·25 전쟁 상황에서는 대구와 부산의 다방과 술집들에 피란 문인들이 북적댔다. 가난한 문인들이지만, 그들의 출입은 제한되지 않았다. 돈이 없으면 외상을 달아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탁월한 작품들을 보면, 그들의 가난은 아이러니하게도 얼마나 풍성하고 풍족한 삶의 자양이었는지가 짐작된다.
#진화하는 신세계
사실 카페는 고요한 곳이라고 할 수 없다. 미묘한 소음의 공간이다. 사람들의 대화가 끊이지 않고, 커피잔이 탁자와 부딪치는 소리와 음악 소리가 있는 데다, 매력적인 커피향이 배어 있다. 이런 공간의 특성이 정신활동을 자극하고, 창작 활동에 활력을 부여한다는 게 묘하다. 이제 도시의 웬만한 카페에는 이런 '소음 속에서 가꾸는 자기만의 고요한 늪'에서 휴대용 컴퓨터를 켜놓은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대학 주변의 카페들에는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이 보인다. 그들 속에는 당연히 문인들도 있다. 아예 스터디 카페도 생겼다. 새로운 세계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지만, 카페를 찾아 인증샷을 하는 순례 행각이 젊은 세대들의 대세를 이루기도 한다. 식사를 제공하거나 제빵을 겸하는 등 새로운 분위기로의 진화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카페 발달이 그 규모 면이나 다양성에서 세계적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대도시는 물론 농촌 지역의 전망 좋은 곳들엔 고급스러운 대형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고, 대형일수록 주차장이 꽉꽉 차면서 성업을 이루는 세상이 되어간다. 과도한 상업적인 요소들로 인한 변질이 심화하고 있다.
그럴수록 문인들은 커피값이 저렴하면서도 아늑한 공간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문인들은 예전처럼 '대책 없는' 외로운 모습들을 드러내지 못한다. 지금은 어디에서든 가난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문인들도 카드로 커피값을 긁는 시대인 것이다. 대형 카페의 등장과 기계화한 계산으로 단골 개념이 아예 없다. 외상은 꿈도 꾸지 못하는 때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카페는 이제 누구에게나 익명의 공간이다. 다만 제가 자주 드나드는 카페의 구석을 차지하여 단골로서의 고독한 면모를 스스로 은밀히 유지할 뿐이다. 이를 두고 요즘 한국 문학인들의 달라진 한 풍경이라고 신기해할 이들도 있을까?
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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