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 골목길엔 아이들 맑은 눈 틔우던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생가가 있는 덕계리 구석들
구평마을 경로당과 한 건물
이오덕 작은문학관 자리잡아
탄생 100주년 기념해 새단장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 일환
문학관 인근에는 벽화그리고
조형물 설치해 동화거리 조성

이오덕 작은문학관은 2016년 '창조적마을 만들기' 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건립됐다.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이오덕 선생의 고향마을 후배인 박효일 문학관 건립 추진위원장, '이오덕 어린이문학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상임대표, 이오덕 선생의 맏아들인 이정우 이오덕학교 교장 등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이오덕 작은문학관에는 육필원고, 책, 영상 등이 알차게 갖춰져 있다.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나는 오빠가 보고 싶어요./남의 집에 일꾼을 들었는데/우리 오빠 고생하는 것 보면/참 눈물이 납니다./아래 저녁에 왔는데/참 뱃작 말랐는 걸 보고/나는 어머니하고 울었습니다." ('우리 오빠' 정점열·상주 공검 2학년·1958)
"누나는 형님 따라/서울로 식모살이 갔다./내 마음은 언제나/울고 싶은 마음/교실에서 산을 바라보면/내 눈에는 서울이 보인다./그러면 눈물이 나올라 한다."('누나' 김진복·상주 청리 4학년·1964)
이 시를 쓴 시골 아이들은 이제 일흔을 넘긴 할매·할배가 됐을 텐데, 지금도 그 시절이 떠오르면 오빠, 누나 생각에 눈물을 글썽일는지. 저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이 시를 읽으면 가슴이 먹먹해질 것이다. 저 어린 시인들의 시가 담고 있는 진실이 마음 깊숙한 곳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그 진실이란 글에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글 쓴 사람의 삶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아이들이 참 불쌍하네!'라는 생각을 넘어서서, 아이들이 당시에 느꼈을 그리움, 안쓰러움, 미안함 등이 뒤섞인 감정을 함께 느끼게 된다. 60여 년 전의 어린 시인과 오늘의 내가 같은 주파수로 공명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저 아이들이 진실이 담긴 글을 쓰도록 이끌어준 사람이 이오덕(1925~2003) 선생이다. 청송군 현서면 덕계리 구석들에서 태어난 그는 화목소학교(초등학교)를 거쳐 영덕농업실수학교를 졸업하고 영덕군청 직원으로 특채돼 잠시 근무했다. 교사가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어 독학으로 교원시험을 준비해 1944년 합격했다. 그해 청송 부동공립국민학교(초등학교)에 부임, 1986년 성주 대서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42년 동안 주로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저자 '이오덕'을 검색하면 동화, 동시, 수필, 평론, 일기, 편지 등 단행본 192권의 목록이 나온다. 교육자, 어린이문학가, 비평가, 글쓰기 교육 운동가, 우리 말 살리기 운동가로서 치열하게 살아온 결과물이다.
그 중심에는 1950년대부터 시작한 글쓰기 교육이 있다. 그는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하는 것은 아이들을 착하고 참되게, 곧 사람답게 기르는 가장 좋은 교육"('이오덕의 글쓰기' 머리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정직한 글을 쓰게 하지 않고, 삶을 등지고 돌아앉아 거짓된 말장난을 하게 만드는 교육현실에 그는 늘 가슴 아파하고 분노했다. 그는 아이들의 삶이 녹아있는 글을 모아 책을 만들고, 글쓰기 교육의 방법을 제시해 왔다. 권정생을 비롯한 많은 어린이문학가들의 창작과 발표를 도왔으며, 1983년에는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함께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만들어 글쓰기 교육운동을 펼쳤다. 퇴임 후에는 우리말 살리기 운동으로 범위를 넓혔으며, 그가 쓴 '우리글 바로쓰기'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글 쓰는 사람들의 필독서로 꼽는다.
이오덕 선생의 글쓰기의 핵심은 글(말)과 삶(사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바로 보고 정직하게 쓴 글은 글 쓰는 사람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게 만든다. 그러나 남에게 보여주고 칭찬듣기 위해 꾸며 쓴 거짓 글은 사람과 삶의 틈이 점점 벌어지게 만든다. 아이들을 밝고 순수하고 귀여운 존재로만 보고 싶어 하는 어른들의 욕망과 어른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아이들의 욕망이 만나 생겨나는 일은 단순히 꾸며 쓴 말장난이 칭찬과 상을 받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신의 참모습을 낮춰보게 되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의 말에 자기 삶을 고스란히 맡겨버리는 사람으로 자라게 될 수도 있다. 앞서 소개한 두 편의 시도 아이들이 삶을 바로 보고 정직하게 쓴 글이어서 감동을 준다. 그렇다고 당시 아이들이 힘들고 괴로운 일만 쓰지는 않았다.
"노란 서숙/고개 숙이고/서숙밭에 새 후치는/깡통/바람 불면/땡그랑 땡그랑/대가빠리만 달린/허수아비도/깍꿀로/덕새를 넘는다."('서숙' 박선용·상주 청리 4학년·1964)
조가 누렇게 익은 밭에서 허수아비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그린 시다. 상주지역 사투리가 그대로 살아있다. 상주 사투리에 익숙한 독자라면 음성지원이 되는 것처럼 읽힐 것이다. '덕새를 넘는다', '덕수넘는다'는 말은 아이들이 들떠서 마구 뛰어다니는 걸 보고 어른들이 자주 하는 말이었다. 시를 쓴 어린이가 흔들리는 허수아비를 보고, 신나서 뛰어다니는 모습이 연상이 됐고, 자기가 그랬을 때 어른들이 하던 말이 생각났을 것이다.
이오덕 선생은 아이들이 평소에 쓰는 말 그대로 글을 쓰도록 했다. 그는 어느 글쓰기 교육 강연에서 "사투리를 쓰지 말라니요? 그러면 안 됩니다. 사투리를 많이 살려 써야합니다. 사투리는 아주 귀한 우리 재산입니다. 그 고장 재산이며 나라의 문화유산입니다."('내 삶에 들어온 이오덕')라고 했다. 아이가 저렇게 쓴 시를 만약 선생님이 표준말로 바꿔버렸다면 저 시는 아마도 싱거운 시가 됐을 것이다. 사투리를 살려 써야하는 이유는 글맛이 풍부해지기도 하지만 그보다 아이가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자기가 실제 쓰는 말로 자유롭고 생생하게 쓰도록 해준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글쓰기 교육은 아이들이 삶의 참모습을 깨닫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어른으로 자라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올해는 이오덕 선생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가 졸업했고 1916년부터 세 학기동안 교사로 근무했던 화목초등학교 담장에는 '덕산 이오덕 선생 탄신 100주년 기념 이오덕 작은문학관 방문의 해'라고 적힌 현수막이 덕계리 주민일동의 이름으로 걸려있다.

이오덕 작은문학관 앞에는 이오덕 선생이 쓴 '우리고향 화목'을 자연석에 새긴 비가 있다, 문학관에서 나와 왼쪽으로 보이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 마을이 이오덕 선생 생가가 있는 덕계리 '구석들(구평)'이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청송 이오덕작은문학관의 이오덕선생 사진. 올해는 이오덕 선생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이오덕 작은문학관은 2016년 '창조적마을 만들기' 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건립이 추진됐다. 이오덕 작은문학관은 그의 고향마을인 구평마을 경로당과 한 건물을 나눠 쓰고 있다. 이오덕 선생의 고향마을 후배인 박효일 문학관 건립 추진위원장, '이오덕 어린이문학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상임대표, 이오덕 선생의 맏아들인 이정우 이오덕학교 교장 등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문학관에는 육필원고, 책, 영상 등이 알차게 갖춰져 있다.
청송군에서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으로 문학관 인근에 벽화 등 조형물을 설치해 이오덕 동화거리를 만들었다. 지난 17일에는 어린이 문화연대가 주관한 '권정생 선생 18주기 추모식 및 이오덕 선생 탄생 100주년 문학기행' 참가자들이 이오덕 작은문학관과 화목초등학교 등을 방문했다. 이오덕 선생이 함께 했던 단체 사람들이나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곳 주민들은 구산리, 덕계리, 화목리 등 현서면 중심지 일대를 예전부터 '화목'이라 불러왔다. 조선시대에 있었던 화목역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작은문학관 앞에는 이오덕 선생이 쓴 '우리고향 화목'을 자연석에 새긴 비가 있다, 문학관에서 나와 왼쪽으로 보이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 마을이 이오덕 선생 생가가 있는 덕계리 '구석들(구평)'이다.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몽실언니'의 배경이 된, 권정생 선생의 외가 마을 화목리 '댓골(죽곡)'이다. 이오덕 선생의 동화 '버찌가 익을 무렵'은 그가 다녔고, 아이들을 가르쳤던 화목초등학교의 기억을 소재로 해서 쓴 작품이다. 예전에는 교정에 큰 벚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청송 이오덕작은문학관 마을 벽화.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청송군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으로 문학관 인근에 벽화 등 조형물을 설치해 이오덕 동화거리를 만들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이오덕 작은문학관에서 전시물과 영상을 관람하고 나서 문학관에 비치돼 있는 이오덕 선생의 책을 한 권 얻어 나오면 좋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이정우 교장이 기증한 책이다. 이오덕 동화거리와 화목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적당한 쉼터에 앉아 그 책을 읽는다면 더욱 알찬 탐방이 될 것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이오덕 선생이 오늘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본다면 과연 뭐라고 할까 상상해 보는 것도 뜻깊은 일이겠다.
글=김광재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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