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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순의 문명산책] 어느 영웅의 몰락

2025-05-30

분서갱유·불로장생·만리장성

영원한 질서에 대한 강박관념

폭력적 통일이 낳은 세쌍둥이

그가 놓친 건 교류와 공존 가치

이를 운영할 겸손이라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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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 명예교수
시안(西安)에서 진시황을 만났다. 기원전 3세기, 혼돈과 분열의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영웅이었다. 그가 세운 '진(秦)'나라는 하나의 법, 하나의 문자, 하나의 화폐, 하나의 도량형, 그리고 하나의 길이라는 새로운 질서 위에 설계된 '하나의 제국'이었다. 시진핑은 그의 영웅화 작업에 한창이다.

극단적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국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진시황은 중앙집권적 국가 경영이 필요했다. 한비자(韓非子)의 법가(法家) 사상을 청사진으로 삼은 그는 현실주의적 통치를 위해 네 가지 표준화 작업에 착수했다. 지역마다 달리 사용하던 문자를 표준화하여 모든 생각과 기억의 공유를 꾀했다. 세금, 군수 물자, 상업 활동을 중앙 기준으로 재편성하기 위해 도량형도 표준화했으며, 엽전으로 제국 전체의 공식 화폐를 지정하여 유통을 단일화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수레바퀴의 규격을 일정하게 하여 지역 간 이동의 효율성도 높였다. 문자, 도량형, 화폐, 바퀴의 통일로 그는 정치와 문화와 경제의 경계를 넘는 문명 통일의 길을 열었다. 그리하여 진(秦)은 오늘의 '중국(China)'을 가리키는 어원이 되었고, 수천 년간 동아시아 정치질서의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이 탁월한 표준화의 위업은 언제부터인가 획일화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다른 생각을 용납할 수 없었던 그의 통치는 결국 분서갱유(焚書坑儒)라는 끔찍한 폭력으로 귀결되어 수천 권에 달하는 경서와 백가의 책을 불태웠고 460여 명이나 되는 유학자들을 생매장시키고 말았다. 그것은 대학살이자 대파괴였으며,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아 교류와 전통을 단절시키는 행위였다. 불탄 것은 책이었지만, 사라진 것은 사상의 다양성과 지식의 축적이었다.

이러한 폭력적 통일을 더욱 견고히 해준 것이 만리장성의 축성이었다. 만리장성은 흉노족의 방어를 위한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타자와의 접촉, 혹은 다른 가치를 거부하는 벽이 되었고, 문명의 안과 밖을 갈라놓는 심리적 장벽이 되고 말았다. 중국 중심의 문명 세계를 규정하고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하려는 구조였다.

그가 불로장생에 집착하여 불사약을 찾아 나선 것도 마찬가지다. 영원한 질서의 구축을 위해서는 결코 늙거나 죽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불사약이라고 믿은 수은이 포함된 도가의 선약 복용은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앞당기고 말았다. 결국 '불로장생'은 '분서갱유'와 '만리장성'과 함께 영원한 질서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세쌍둥이였던 것이다.

새로운 질서를 모색했던 진시황은 탁월한 문명창조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자신이 만든 세계 속에 타자의 자리를 남겨두지 않는 순간 그것은 곧바로 황제 자신에게로 수렴되는 획일화의 길이 되고 말았다. 문명은 힘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그가 놓친 것은 '교류와 공존'의 가치와 이를 운영할 수 있는 겸손이라는 '지혜'였다. 그것은 기억과 질문, 그리고 서로 다른 존재를 견디는 능력 위에 자라나는 것들이다. 제도를 지속할 후계자를 기르는 대신, 그는 사슴을 두고 말이라 우기던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간신 조고를 의지했다. 결국 제국의 문명은 폐쇄적 고립으로 치달았고, 황제의 죽음과 함께 15년 만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진시황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높이 50m, 너비 400m의 거대한 무덤이다. 하지만 그를 지키고 있는 8천기 이상의 병마용 테라코타 조각들은 더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 21세기 새로운 중화 문명을 꿈꾸는 시진핑이 택한 길이 불안하기만 하다.
계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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