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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옷깃의 변호사 배지를 떼다

2025-06-02

정치권 갈등과 맞물리면서

대한변협의 권위는 무너져

누가 새로운 대통령이 되든

자랑스럽게 배지 달 수 있는

원칙·정의의 세상 열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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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소신은 때론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태생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진보 성향이 되기 어려운 입장인데, 최근 뜻하지 않게 정치에 뜻을 둔 진보 인사로 오해받았다. 지난 5월8일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역임한 9명이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특검법, 청문회, 탄핵 추진을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현직을 제외하고 생존 중인 역대 변협회장 14명 중 9명이 참여하였지만, 필자는 소신에 따라 성명서에 연명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분명히 밝히지만, 개인적으로 재판 절차나 결과와 관련하여 헌법이나 법률위반이 명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법부를 공격하는 것은 절대 반대한다. 분쟁 해결을 위한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는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국가기관이다. 따라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법부를 흔드는 어떠한 시도도 허용될 수 없다.

법의 여신 '디케'는 한 손에는 공정을 상징하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추상같은 법의 집행을 의미하는 칼을 들고 있다. 공정하고 추상같이 준엄한 판결은 법원에 대한 무한한 신뢰의 기초이다. 대통령만 유일하게 구속 기간 산정 방식을 변경해서 석방해주고, 야당 대표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재판을 진행하는 모습은 사법부 스스로 불신을 자초한 행동이다.

대법원장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이 부당하다고 느끼지만, 그러한 압박의 원인을 제공한 대법원장의 적절하지 못한 판단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미 충분히 심리가 되었다면 눈치 보지 말고 신속하게 선고하였어야 한다. 아니면 선거를 목전에 두고 이례적으로 빠른 선고 절차를 진행할 만한 합당한 이유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부분을 명확하게 지적하지 않은 채 법치주의 수호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성명서를 발표한다면 그 의미가 퇴색되고 만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변호사협회가 공정함과 객관성을 잃은 채 지나치게 정치 문제에 개입하는 모양새가 되어, 대외적으로 신뢰를 잃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념적 성향을 가진 회원들의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양쪽의 문제점을 공정하게 지적하지 않으면 동참하기 어렵다는 취지를 전달하였다.

결국 다수의 의견에 따라 양비론이 아닌 더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정치적 목적에 따른 사법부 공격의 문제점만 지적하는 내용으로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그랬더니 왜 동참하지 않았느냐와 관련하여 억측을 불러일으키고 기자들의 연락을 받았다. 이유를 차분히 설명하니 모두가 공감하며 이해해 주었다.

예전에 대한변호사협회의 성명서는 무게감이 있었다. 독재정권 하에서 대한변호사협회의 성명서는 어둠 속 등불과도 같은 역할을 하였다. 어느 순간 그 권위가 무너지고 힘이 약해졌다. 원칙을 잃은 채 정치권의 갈등과 맞물리면서부터이다. 원칙을 정하고 그에 따라 무엇이 옳은지를 엄중하게 판단하여야 하는데,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정의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냐는 강한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다. 부끄러운 마음에 등록 이후 계속 옷깃에 달고 다니던 변호사 배지를 떼어 놓았다.

대한변호사협회장 재직 중 독재정권의 비상계엄 선포에 반대하다 두 차례나 구속된 후, 서울을 떠나 연고도 없는 경북 상주와 안동, 김천 등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다 돌아가신 이병린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의 흉상이 변호사회관에 세워져 있는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내일이면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다시 옷깃에 자랑스럽게 변호사 배지를 달고 다닐 수 있는 원칙과 정의가 지켜지는 세상을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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