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형식 거리활동가
조선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박팽년,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응부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유성원. 이 여섯 충신을 사육신(死六臣)이라 일컫는다.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동에는 이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 육신사(六臣祠)가 자리하고 있다. 지형이 묘하다 하여 묘리(竗里) 혹은 묘골(竗谷) 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박팽년의 직계 후손들이 모여 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박팽년은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해 좌부승지, 형조 판서를 역임했으나, 단종 복위를 주도한 혐의로 일가가 멸문지화를 당하는 비극을 맞는다. 하지만 그의 차남 박순(朴珣)의 유복자인 박비(朴婢)가 천운으로 살아남아 사육신 중 유일하게 후손을 남길 수 있었다. 박순의 부인 이씨의 친정이던 묘골에서 후손들은 터를 잡고 대대로 살아왔으며, 후손이 없는 다른 사육신들의 제사를 함께 지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얼마 전 대구를 소개하는 SNS 페이지에서 육신사에 차량이 돌진해 벽이 훼손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착오였겠지만 해당 게시물에서 육신사를 '사찰'이라 표기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사찰(寺刹)은 불상을 모시고 부처님을 본받아 불경을 공부하는 곳이고, 사당(祠堂)은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유교식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두 공간은 명확히 구별되어야 한다.
묘골마을은 56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집성촌답게, 유명인도 여럿 배출했다. 9선 국회의원이자 3선 국회의장을 지낸 박준규 의장이 대표적이다. 그의 생가터에는 그를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부인 박두을 여사와 배우 박재정도 이곳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70여 호에 달하는 가구가 모여 살았던 묘골마을도 도시화와 산업화의 물결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도시로 이주하는 주민들로 인구가 상당히 감소했고, 그로 인해 집성촌은 점차 쇠락했다. 그러나 마을이 간직한 사육신의 충절과 전통의 뿌리만큼은 여전히 굳건하다.
몇 년 전부턴 고즈넉한 한옥 카페가 자리 잡아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도심에서 다소 떨어진 위치임에도 방문객들로 북적인다. 바로 박팽년 선생의 22세손인 젊은 대표가 운영하는 한옥 카페 '묘운'이다. 전통을 보존하며 현대적 가치를 더하는 접근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이 공간은 점점 사라져 가는 집성촌의 미래에 대한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과거의 지혜와 가치, 그리고 전통적인 삶의 방식은 이 지속가능한 발전과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열쇠가 될 것이다. 과거야말로 우리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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