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2차전지 동반 침체 ‘산업위기지역’ 지정 건의
중장기적으로 특별법 제정…전기료 인하·세제 지원 시급

포항시내 전경<포항시 제공>
철강과 2차전지라는 두 축이 동시에 흔들리며, 포항 산업계가 사상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주요 철강사의 설비 가동률은 60~70%로 떨어졌고, 2차전지 소재기업들은 수출 급감과 투자 위축에 시달리고 있다. 나주영 포항상공회의소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포항은 산업 붕괴 직전"이라며 정부에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 지정과 '철강·2차전지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 세제 혜택, 연구개발 지원 등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역 산업 생태계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절박한 경고다.
◆포항, 산업위기 탈출 위한 절박한 호소
이에 포항시는 정부에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 지정과 함께 '철강산업 특별지원법', '2차전지산업 특별지원법' 제정을 건의했다. 산업계는 단기적으로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와 세제 혜택을 요구하며 정부 차원의 실질적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 지정은 과거 조선업 불황 당시 거제, 군산 등지에 적용돼 지역경제 회복에 기여한 바 있다. 해당 지역으로 지정되면 고용유지지원금, 중소기업 경영컨설팅, 재기지원 자금 등 맞춤형 국가지원이 가능해진다. 철강과 2차전지 산업은 글로벌 공급망 변동에 민감하고, 설비투자 회수가 장기인 만큼 위기 시 선제 개입이 필수적이다. 포항이 이 제도 적용을 받으면 산업 붕괴를 막고 일자리 유출을 최소화할 수 있다. 단순한 경기부양이 아닌, 산업 기반의 보존과 전환을 위한 첫걸음이 된다.
하지만 근본적 해법은 따로 있다. 포항시는 산업위기지역 지정 외에도 개별 산업을 겨냥한 특별법 제정을 병행해 줄 것을 요구 중이다. '철강산업 특별지원법'은 글로벌 탈탄소 흐름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국내 철강업계를 위한 법적 기반이다. 법안은 ▲탄소감축 설비 투자 지원 ▲정부 보조금 및 재정지원(전기료 등) ▲중소·중견 기업 연구개발 지원 ▲철강산업 보호조치 강화 지원 등을 담을 것으로 예상된다. 포항제철소를 중심으로 형성된 철강 클러스터의 유지와 고도화를 위한 전략적 입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 다른 축인 '2차전지산업 특별지원법'도 시급하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 둔화와 중국의 저가 공세 속에 국내 배터리 산업의 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다. 포항은 에코프로, 포스코퓨처엠 등 배터리 소재기업이 밀집해 있는 만큼, 공급망 내재화와 첨단소재 개발을 위한 국가적 지원이 절실하다. 해당 법안에는 ▲전력비 특례 지원 ▲환경처리시설 지원 ▲국내 소재산업 고도화 지원 ▲글로벌 기업 유치를 위한 입지·세제 인센티브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보조금이 아닌,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향이어야 한다.
◆전기료 인하·세제 지원 시급
한편, 산업계는 즉각적인 정책 대응으로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철강과 2차전지 모두 고전력 제조공정에 의존하고 있어 전기요금은 생산원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최근의 전기요금 급등이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2년 이후 5차례 인상됐으며, 누적 기준으로 평균 40% 이상 올랐다. 특히 2023년 4월에는 산업용 고압 전력 요금이 kWh당 15.6원 인상됐고, 올해 1월에도 추가 인상이 단행됐다. 포항지역 산업계에 따르면 수요 둔화와 전기요금 상승 등으로 설비 가동률을 대폭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일수록 전력비 비중이 높아 경영 압박이 더 심각하다.
전기요금 인상은 수출가격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고,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국산 제품의 퇴출을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 밀집된 포항은 전력요금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산업 생태계를 지탱하는 전력 인프라가 비용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면, 설비투자 위축,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위기 산업에 한해 탄력요금제를 도입하거나 한시적으로 요금 인하를 단행하는 등 적극적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
세제 지원도 중요하다. 위기 국면의 산업은 설비투자와 고용 확대에 주저하게 되며, 이는 지역 경기 위축으로 이어진다. 법인세 감면, 지방세 면제, 투자세액공제 확대 같은 유인책이 필요하다. 특히 소재·부품·장비 분야 스타트업이나 기술 기반 중소기업은 세제 혜택 없이는 기술개발과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는다. 산업 전환기에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환경'이 정책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궁극적으로 포항 산업의 회복력은 '구조 전환'과 '생태계 재편'에 달려 있다. 철강업이 탄소중립과 디지털화에 기반한 '친환경 고부가가치 철강'으로 진화하고, 2차전지 산업이 단순 조립에서 벗어나 소재부터 리사이클링까지 포괄하는 수직계열화를 이뤄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지방정부, 민간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산업 전환 로드맵이 마련돼야 한다.
위기일수록 선택은 뚜렷해져야 한다. 지금 포항은 산업의 명운뿐 아니라 도시의 미래를 결정짓는 갈림길에 서 있다. 특별법은 단지 법률이 아닌,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으로 가는 출발선이 돼야 한다. 정부의 책임 있는 응답이 절실한 이유다.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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