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피해 세종서 지내다 나흘 만에 잡혀
“스토킹 범죄 구속영장 발부 기준 현실화 시급”

영남일보DB
대구 달서구에서 스토킹 피해 여성을 살해한 뒤 달아났던 40대 남성이 나흘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경찰과 사법당국의 초기 대응을 놓고 비판이 적잖다. 재범 가능성이 제기됐음에도 구속영장이 기각됐고, 피해자가 사건 직전 신변보호장치인 스마트워치를 반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피해자 보호 조치가 충분했는지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대구 성서경찰서는 피의자 A(48)씨를 살인 혐의로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15일 밝혔다. A씨는 전날 오후 세종시 조치원읍의 한 컨테이너 창고 인근에서 검거됐다.
A씨는 지난 10일 새벽 3시30분쯤 대구 달서구 장기동 한 아파트 6층에 설치된 가스배관을 타고 침입해 50대 여성 B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은 과거 스토킹 피해자와 가해자 관계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범행 직후 지인 명의 차량을 이용해 세종시 부강면 야산으로 도주했다. 이후 차량을 버리고 택시로 갈아타 부친의 산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 뒤 종적을 감췄다. 경찰 수백명과 탐지견, 드론 등을 통해 야산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수색 과정에서 경찰은 A씨가 현금을 구하기 위해 조치원읍의 한 컨테이너 창고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 잠복했다. 번호판이 없는 오토바이를 타고 현장에 나타난 A씨는 잠복중이던 경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많은 아쉬움이 남은 사건이다. 사건 발생 전 재범 위험성이 제기됐음에도 구속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경찰과 법원의 초기 대응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A씨는 지난 4월에도 피해자의 주거지에 찾아가 흉기로 위협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당시 경찰은 재범 우려를 근거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후 법원은 A씨에게 접근금지 등 잠정조치를 내렸다. 피해자는 이 시기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를 반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피해자 집에 지능형 CCTV를 설치하는 등 보호조치를 시행했지만, A씨가 외벽 가스배관을 통해 침입하면서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박동균 대구한의대 교수(경찰행정학과)는 "법원이 도주 우려가 없다고 봤지만 결과적으로 피의자가 재범 후 도주한 점은 사전 판단에 있어 문제점을 드러냈다"며 "스토킹범죄는 재범 가능성과 피해 확대 위험이 높은 만큼, 구속영장 발부 기준을 보다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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