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유 비자 거부돼 유럽 돌아오는 길 택해…15년 만에 다시 방문
구병원, 외국인 환자에 탈장 수술 무료 지원…국경 넘은 의료 감동
“국적도, 돈도 중요치 않아… 생명을 향한 의료의 본령 지켰다”

구병원에서 탈장 수술을 받은 나훔 이삭씨(가운데)와 의료진들. 왼쪽 두 번째는 수술을 집도한 구자일 병원장, 오른쪽 둘째는 나훔 이삭씨 부인.<구병원 제공>
15년 전 한국에서 생명을 구한 중앙아메리카 온두라스 남성이 다시 한국을 찾았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여전히 '한국 의료'였다.
주인공은 온두라스에 거주하는 나훔 이삭(Nahon Is-sac·45)씨. 과거 삼륜오토바이 택시 운전을 하다 현재는 선교사로 활동 중인 그는 지난 2010년 왼쪽 서혜부 탈장으로 수년간 고통을 겪다 한국 선교사를 통해 대구 구병원을 소개받았다. 당시 그는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와 수술을 받았고, 건강을 되찾아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쪽, 오른쪽에 탈장이 신규로 발생했다. 고통이 반복됐지만, 그는 주저 없이 한국행을 결심했다. "돈이 들어도 한국에서 치료받겠다"는 그의 말은 의료 혜택조차 부족한 조국의 현실과 대조를 이뤘다. 실제로 온두라스는 외과 수술 인프라가 거의 전무한 상태다.
하지만 한국까지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직항이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미국이 온두라스 국민에게 경유 비자 발급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유럽을 돌아오는 항로를 선택해야 했다. 그가 구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총 32시간이 걸렸다. 지난 15일 입국한 그는 이틀 뒤인 17일 복강경 탈장 수술을 받았다. 현재는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수술을 집도한 구자일 병원장은 "한국에서는 1시간 이내 끝나는 흔한 수술이지만, 그에게는 생명을 건 여정이었다"며 "의료 기술이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례"라고 말했다.
구병원은 이번에도 치료비를 받지 않았다. 나훔 이삭씨의 수술과 진료에는 약 300만 원의 비용이 들지만, 구 병원장은 15년 전과 마찬가지로 "고통 중에도 다시 우리를 믿고 찾아와준 데 대한 고마움"이라며 치료비를 전액 면제했다.
나훔 이삭씨는 "한국은 제게 두 번이나 생명을 준 나라"라며 "의료진의 헌신을 평생 잊지 않겠다"고 고마워 했다. 그는 내달 고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한편 구병원은 2000년대 초부터 외국인 근로자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유방암, 갑상선암 등 무료 진료와 수술을 이어오고 있다. 구 병원장은 "진짜 의료는 국적도, 지갑 사정도 보지 않는다"며 "생명을 돌보는 일이 그 출발점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승규
의료와 달성군을 맡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깊게 전달 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