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아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르네여성의원 원장
최근 강원도 속초의 한 산부인과에서 발생한 사건은, 우리 사회가 의료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의료행위의 본질을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지난해 7월, 20대 여성 환자가 산부인과에서 시술을 받던 중 심정지에 빠졌고, 이후 상급병원 중환자실에서 한 달 이상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사망에 이르렀다. 국과수 부검 결과는 폐색전증. 의료진은 증상 발생 직후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고, 시술을 집도한 산부인과 전문의가 직접 대형병원으로 동행해 환자 이송까지 책임졌다. 그러나 그 결과는 유가족의 고소와 1년에 걸친 경찰 수사, 그리고 구속영장 청구였다. 법원은 범죄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지만, 그 이전까지의 과정은 의료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전제한 사회적 분위기를 낱낱이 보여줬다.
이 사건은 의료행위의 본질적 한계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어떤 수술이나 시술도 100%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다. 아무리 숙련된 의사라 하더라도, 아무리 철저하게 대비하더라도, 불가항력적인 합병증은 존재한다. 특히 폐색전증처럼 예측이 어렵고 조기 증상이 희박한 전신적 합병증은 완전히 방지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빴으니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는 감정적 접근은 과연 합리적인가?
더 큰 문제는 이런 인식이 수사당국과 일반 국민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점이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병원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고, 의료기록과 동의서 확보, 병원 관계자 조사에 착수했다. 아직 부검 결과도, 의료 감정도 나오지 않은 시점이었음에도, 마치 '과실이 당연히 있다'는 전제로 접근했다. 이러한 '결과 중심' 사고방식은 의료인을 위축시키고 결국 전체 진료 환경을 위태롭게 만든다.
특히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외과, 흉부외과처럼 환자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고위험 진료과는 더욱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날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시술이 정말 꼭 필요한가?"
"차라리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는 게 낫지 않을까?"
"혹시 문제가 생기면, 나는 어떻게 될까?"
분만을 예로 들어보자.
분만은 본질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행위다. 산모와 태아, 두 생명을 동시에 다뤄야 하며, 사소한 변수 하나로도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법제도와 판례는 분만 중 불가항력적 사고가 발생해도 의료진에게 민사상 과중한 배상책임을 지우고 있다. 산부인과 개원의들은 의료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보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며, 이로 인해 많은 산과 의사들이 분만을 포기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진료 영역 축소가 아니라, 산모와 아이 모두가 위험에 노출되는 구조적 위기를 의미한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의료인을 전문가로 존중하지 않고, 의료행위와 범죄 행위의 경계를 혼동하고 있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이제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전문가 중심의 감정 시스템과 공정한 의료분쟁 조정제도를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 형사 책임은 고의나 중대한 과실에 한정되어야 하며, 불가항력적 결과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의료를 유지하려면, 단지 더 많은 의사를 양산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진정한 해법은 의료진이 책임만 전가받지 않고,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도, 의료진도, 모두가 덜 고통받을 수 있다.
의료는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의 구조는, 그 불완전함마저 죄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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