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재근 문화평론가
얼마 전 정말 꿈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한국 뮤지컬 작품의 미국 토니상 수상이다. 2016년에 서울 대학로의 극장에서 초연된 '어쩌면 해피엔딩'이 올 토니상에서 작품상, 연출상, 극본상, 음악상, 남우주연상, 무대디자인상 등 6개 부문을 받았다. 보통 영화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각본, 연기 등 4개 부문의 상을 받으면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는 표현을 쓴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뮤지컬이기 때문에 음악상도 핵심 부문이다. 즉 이 작품이 작품, 연출, 극본, 음악, 연기상을 받은 것은 뮤지컬 연극상의 주요 부문을 싹쓸이하며 올 토니상의 주인공 자리에 우뚝 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가요, 드라마, 영화 등이 해외에서 놀라운 성과를 내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대중문화 주요 시상식에서 수상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극 공연 분야는 그런 한류의 대열에 끼지 못했었다. 특히 뮤지컬에선 해외 유명 작품들이 극내 시장을 석권하면서 토종 뮤지컬의 존재감이 미약했다. 대중문화 강국으로 떠오른 한국의 약한 고리로 남아있었던 셈이다.
바로 그런 뮤지컬에서 토니상 낭보가 전해졌으니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토니상은 미국에서 연극·뮤지컬 분야 최고 권위의 시상식으로 영화의 아카데미상, 드라마의 에미상, 음악의 그래미상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영국의 BBC는 이번 수상에 대해 "한국은 미국 대중문화 예술상 4개 시상식(에미상·그래미상·아카데미(오스카)상·토니상)에서 모두 수상하는 EGOT(4개상 앞 글자) 지위를 얻었다"라며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이 2022년 에미상, 영화 기생충이 2020년 아카데미상, 소프라노 조수미가 1993년 그래미상을 수상했다"라고 보도했다.
이번 수상은 케이뮤지컬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함을 보여준다. 아직까지는 해외시장은커녕 국내시장에서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적절한 지원만 뒷받침된다면 얼마든지 세계적 콘텐츠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이 작품이 제작될 수 있었던 배경엔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이 있었다. 대학로 초연 후엔 N차 관람에 나선 관객들이 힘이 됐고, CJ ENM도 제작사로 합류했다. 작년부터 시작된 미국 공연엔 국내 제작사 NHN링크가 투자사로 참여했다. 2016년부터 이런 뒷받침이 이어지며 마침내 올해 토니상 수상이라는 결실을 맺은 것이다.
작년 10월부터 뉴욕의 1천석 규모 극장에서 무기한 상연되고 있는데 이번 수상으로 국제적 인기 콘텐츠가 될 걸로 기대된다. 뮤지컬 공연은 한번 뜨면 그 인기 수명이 매우 오래 가기 때문에 장기간 동안 한국 작품의 힘을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은 서울과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로봇의 이야기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애니가 인기인데, 그 제작사가 헐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소니픽쳐스다. 이렇게 다른 나라 제작사가 케이팝을 내세울 정도로 '케이'가 핫 키워드인 상황이다. 그렇게 한국이 '핫'하기 때문에, '어쩌면 해피엔딩'이 한국을 내세운 것도 미국 시장의 좋은 반응에 영향을 미쳤다. 이 작품이 케이 열풍의 수혜자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더욱 한국 문화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작품으로 케이뮤지컬의 가능성이 확인된 만큼 향후 더욱 큰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올 여름에 진행되고 있는 '제19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같은 행사도 언론이 더 크게 조명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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