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윤 국립경국대 부총장
주류란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세력이다. 시대정신이란 특정 지역이나 세대의 경험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다수가 공감하는 가치 체계다. 지난 6·3 대통령 선거는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누가 우리 사회의 주류인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그리고 7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세대에서 지지를 잃었다. 이는 단순한 선거의 패배가 아니다. 영남 지역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자의식과 시대정신 간의 괴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결정적 장면이다.
그러나 선거 이후 영남에서는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자성보다는 외부 탓을 하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젊은 세대의 도덕적 미성숙이나 다른 지역 유권자의 몰이해를 언급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태도는 변화의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버리는 위험한 자기 확증이다. 여전히 우리가 주류라는 미몽에 있는 듯하다.
냉정하게 돌아보면, 영남은 1623년 인조반정 이후 단 한 번도 주류에 있지 않았다. 경기·충청을 기반으로 하는 노론 중심의 일당독재 속에 정치적 변방으로 머물렀다. 영남이라는 지역에 갇혀 '우리끼리만 살아온' 시간이었을 뿐이다.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추진 성과는 우리에게 주류로서 자긍심을 주었으나 그것은 짧은 한 시대의 예외적 흐름으로 평가될 뿐이라는 것이 이번 선거가 보여준 뼈아픈 현실이다.
문제는 지금도 영남이 과거의 영광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박정희 산업화 신화를 여전히 유일한 성공 경험으로 간직하며, 그의 유산을 신앙처럼 떠받드는 인식은 비영남 지역과 새로운 세대에게는 설득력을 잃고 있다. 심지어 산업화 신화보다는 독재의 아픈 기억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는 신화가 아닌, 역사 교과서의 한 장면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유산에 안주하려는 태도는 시대정신과의 불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일찍이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경상도인을 '태산준령(泰山峻嶺)'에 빗대며 '사람들이 굳세고 강직하다. 그러나 이로 인해 성격이 지나치게 강하여 때로는 융통성이 부족한 면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오늘날 영남이 처한 상황은 바로 이 '융통성의 부족'이라는 역사적 자기 한계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영남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과거의 신화를 붙잡은 채 점점 좁아지는 '우리끼리'의 울타리 안에서 머물 것인가, 아니면 열린 시야로 새로운 시대정신을 받아들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설계할 것인가.
새로운 시대정신은 더 이상 특정 지역의 산업화 경험이나 과거의 성장 신화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다양성, 포용, 세대 간 공존,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복지의 확장,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는 더 이상 특정 계층의 요구가 아니라, 시민 다수가 공감하는 사회적 요구가 되었다. 영남 정치가 여전히 안보, 성장, 산업화에만 매달린다면, 더는 이 시대의 언어로 소통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기억의 정치'가 아닌 '미래의 정치'를 시작하는 일이다. 영남이 스스로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영남은 "우리끼리"의 시간을 넘어, "모두의 시간"으로 가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의 시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간에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시대정신을 함께 만들고 그 속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일원이자 주류로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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