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혜진 변호사
열대야가 오기 전 저녁 공기가 아직 선선했던 어느 저녁, 아파트 근처 공원을 돌며 산책한 뒤 다시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만보기 앱 포인트를 받으려고 스마트폰을 조작하며 걷다가 갑자기 '철퍼덕' 소리가 나면서 고꾸라졌다. 안경이 벗겨져 날아가고,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도 튕겨 나갔다. 주차를 하지 못하도록 세워 둔 화강암 연석을 미처 보지 못하고(매일 보던 연석인데) 무릎이 연석과 그대로 충돌하면서 넘어진 것이다. 마침 지나가던 누군가가 놀라 다가왔다. "아이고, 괜찮으세요?"하며 서로 반대방향에 떨어져 있던 스마트폰과 안경을 주워 주셨다.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데 비명이 먼저 새어나왔다.
최근 몇 년새 세 번째다. 스마트폰을 보며 걷다 사고난 게. 외부 회의에 참석했다가 나오면서 문자를 확인하다 통유리로 된 출입문에 '꽝'하고 부딪혀 안경이 휘어지고 눈이 시퍼렇게 멍들었다. 볼썽사나웠지만 크게 다친 덴 없었다. 그 때로부터 불과 몇 달 뒤, 어느 공사장 근처를 지나가다 인도에 놓인 전선 더미에 걸려 넘어졌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보다 앞을 보지 못해 생긴 사고였다. 바지가 찢어지고 무릎과 손이 까였다. 상처를 소독해야 해서 병원에 갔지만 그래도 타박상과 찰과상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정도가 아니었다. 느낌이 그랬다. 무릎 골절까진 아니더라도 실금이라도 갔을 것 같았다. 저녁이라 병원을 바로 가지 못 가고 밤새 끙끙거리며 '무릎 실금 증상' 등을 검색하며 불안을 달래려 애썼다(스마트폰 때문에 사고가 나고도 여전히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모습이라니). 다음날 아침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다행히 골절은 없지만 최소 3~4주는 고생할 것 같다고, 친절한 동네 병원 의사선생님이 말했다. 무릎에 압박밴드를 하고 그 위에 무릎 보호 보조기를 채웠다. 더위가 본격화되기 전이라 보조기를 채우고 절뚝거리면서도 다닐 만은 했고, 몇 주 열심히 물리치료를 받은 덕분에 나는 다시 정상적으로 걷고 있다.
걸어가면서 스마트폰을 보는 행위는 그 자체로 사고의 위험을 갖는다. 나는 보편적 상식을 가진 성인으로 이를 이성적으로 알고 있고, 게다가 이미 두 번의 사소한 사고로 경각심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또 그 위험한 행위로 나아갔다. 뭐 대단히 급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만보기 앱에서 고작 몇 십 원 포인트 받으려다 그렇게 되었다. 왜 이렇게 어리석을까. '이렇게 심하게 넘어질 줄은 몰랐지'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해 보지만 가당치 않음을 잘 안다. 위험을 예측하지 못한 게 아니라 그냥 위험을 무시한 거다. 마치 비정상적인 고수익 알바 일을 하면서 '이거 설마 범죄는 아니겠지?'라고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는, 내가 변호한 수많은 범죄자들처럼 말이다. 첫 번째 사고 직후에 가족 채팅방에 멍든 눈 사진을 보내며 "걸을 때 절대 폰 보지 마, 애들한테도 잔소리 해"라고 했던 나다(두 번째 사고 때부터는 부끄러워서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후회와 반성과 경각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빠르게 퇴색되는 반면 나쁜 습관의 힘은 나를 여전히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먼저 인정해야 한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 중독이구나. 그리고 매일, 마치 이를 닦는 습관처럼, 보행 중 스마트폰 금지 원칙을 되새기고 실천하기. 별 볼일 없는 의지를 믿지 않고, 습관의 힘을 믿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