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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마드리드 인생극장

2025-07-10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스페인의 태양은 뜨거웠다. 다행히 학회가 열렸던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도시 도노스티아-산 세바스티안의 날씨는 쾌적했다. 바스크어인 도노스티아와 스페인어인 산 세바스티안을 나란히 표기한 도시이름처럼, 스페인은 바스크어 사용권인 북부의 바스크지역, 카탈란어 사용권인 바르셀로나가 포함된 카탈루니아지역, 스페인을 수백년간 지배했던 이슬람 왕조의 마지막 수도 그라나다가 포함된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역 등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어우러진 역사와 문화의 역동성이 매력적이었다. 헤밍웨이의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배경이기도 했던 스페인 내전. 당시 폭격당한 마을 게르니카도, 한국인들에게 산티아고 순례길로 잘 알려진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도 근처였는데 일정상 못 갔다.


빌바오 공항에서 도노스티아로 이동하던 자정출발 버스 안. 새벽 1시 넘어 버스역 도착인데 택시는 있을까 걱정했더니 옆자리의 그녀는 마중온 남자친구에게 부탁해 나를 호텔까지 태워주었다. 어느 여행지 버스에서 카드결제가 안되어 곤란했을 때 다른 승객이 표 값을 내줬다던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감사히 받았다. 그렇게 나의 영어와 그들의 스페인어, 상대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몇가지 문장과 단어들, 그리고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진 대화들. 온라인에서 정보 검색하고 휴대폰 지도 보며 길찾아 혼자 여행할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내가 여행지를 이해하고 경험하는 방식은 이런 만남들을 통해서이다.


학회 후 개인휴가. 마드리드에서는 게르니카의 참상을 화폭에 담은 피카소의 원작을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만났고 한인민박 체험을 했다. 여행 플랫폼들의 부상과 여행산업의 구조적인 변화와 함께 나타난 진화된 한인 민박들. 예쁘고 깔끔한 가정집에서, 수시로 바뀌는 여행객들과 정성껏 차려진 한식 집밥을 먹으며 대화한 시간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하숙집같은 느낌이었다. 교환학생, 휴학이나 이직기의 대학생과 직장인, 신혼여행온 부부와 출장온 사업가 등 사람들의 사연도 다양했는데 '유럽여행 처음이라 그냥 다 좋아요. 더 젊을 때 올 걸'이라는 청춘들의 텐션이 유쾌했다. 그들이 다음 여행은, 검색이란 이름의 획일성이 아닌 '나의 여행'을 해볼 수 있길.


미드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도 유명한 알카사르 투어 중 몇몇 사람들이 중도하차할 만큼 더웠던 세비야는 그럼에도 활기와 매력이 가득했다. 플라멩코 개인 레슨을 받던 날, 선생님인 L은 내게 물었다. 스페인어 하니? 아니. 넌 영어하니? 아니. 뭐 그래도 괜찮아 우린 춤추면 되니까. 그날 나는 하루종일 마음이 이상했는데 수업 도중 L의 목소리가 불러 일으킨 어떤 느낌에 엉엉 울어버렸다. 그녀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볼뽀뽀로 위로했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그 끝에 우리는 함께 웃었다. 이 모든 친밀한 소통들이 공통된 언어없이도 가능한 시간, 여행. 언어가 제한될때 사람들은 진솔하고 귀여워진다.


스페인 사람들은 행복해 보여했더니 그들은 동의했다. 일자리나 교육 걱정은 안 해? 택시기사는 말했다. 별로. 스페인 사람들이 부자이기 때문이야? 아니, 우리는 일보다 파티가 더 중요해. 함께 웃었다. 기차 옆자리의 그녀는 말했다. 더 열심히 공부해 더 좋은 직장을 가진들 삶이 큰 차이가 없기에 거기에 목매지 않는다고. 자신만 해도 집도 있고 낡았지만 차도 있고 1 년에 한번쯤 유럽이나 아시아로 휴가갈 수 있고 그 삶에 만족한다고. 삶을 놀이처럼 즐길 줄 아는 사람들과 그들의 여유, 한국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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