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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르포] ‘김태련’ 이름 아래 대구 3·1만세운동 역사가 다시 이어져 …국내외 후손 32명과 함께 되새긴 그날의 정신

2025-07-10 20:41

계성중 지하실 등 독립운동 흔적 탐방
학생들과는 만세삼창으로 울림 더해
“김태련이라는 이름 아래, 과거와 미래 잇는 시간”


10일 오전 10시 대구 중구 대구남산교회에서 김태련 선생의 후손 32명과 대구YMCA 관계자 등이 기념사진은 찍고 있다. 박영민 기자.

10일 오전 10시 대구 중구 대구남산교회에서 김태련 선생의 후손 32명과 대구YMCA 관계자 등이 기념사진은 찍고 있다. 박영민 기자.

10일 오전 11시 30분쯤 대구 중구 계성중학교 대강당에서 김태련 선생의 외손자 최훈진(79) 목사와 계성중학교 학생들이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박영민 기자.

10일 오전 11시 30분쯤 대구 중구 계성중학교 대강당에서 김태련 선생의 외손자 최훈진(79) 목사와 계성중학교 학생들이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박영민 기자.

대구 계성중학교 지하실에서 김태련 선생의 후손들이 당시 독립운동의 흔적을 탐방하고 있다. 박영민 기자.

대구 계성중학교 지하실에서 김태련 선생의 후손들이 당시 독립운동의 흔적을 탐방하고 있다. 박영민 기자.

대구 3·1만세운동을 주도한 김태련 지사. 대구YMCA 제공

대구 3·1만세운동을 주도한 김태련 지사. 대구YMCA 제공

10일 오후 5시 대구YMCA카페에서 서승택 웹툰 작가가 AI로 제작한 김태련 선생의 이미지를 소개하고 있다. 박영민 기자.

10일 오후 5시 대구YMCA카페에서 서승택 웹툰 작가가 AI로 제작한 김태련 선생의 이미지를 소개하고 있다. 박영민 기자.

10일 오전 대구남산교회엔 이른 시간부터 발걸음이 쉴새없이 이어졌다. 일제강점기 대구 3·1 만세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 김태련 선생의 후손 32명에 대한 환영식이 열려서다. 이 중 24명은 미국 콜로라도, 커네티컷, 메사추세츠, 메릴랜드, 뉴저지 등지에서 왔다. 나머지 8명은 서울에서 찾았다. 이들은 김태련 선생의 3세대~5세대 후손들이다. 대부분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한국어는 미숙했다. 하지만 도충구 남산교회 원로장로가 대구의 독립운동사에 대해 설명하자 귀를 쫑긋 세우며,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후손 초청행사는 대구YMCA가 주관해 '독립운동가 김태련의 후손, 110년 만에 대구YMCA로 오다'라는 주제로 지난 9일부터 3일간 열리고 있다.


이날 첫 일정으로 후손들이 모인 대구 남산교회는 김 선생이 장로로 활동하며 민족정신을 일깨웠던 곳이다. 환영식에서 손산문 영남신학대 교수(대구YMCA 110주년기념사업위원장)는 "김태련 선생의 신앙은 교회 안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거리로 나아가 조국의 독립을 외쳤다"며 "그 정신을 어떻게 현재의 기억으로 남기고, 미래 세대에 계승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김 선생의 후손들은 그간 미국과 국내에 흩어져 살아왔다. 이번 대구 방문은 콜로라도에 거주 중인 김 선생의 외손자 최훈진(79) 목사가 가교 역할을 맡았다.


최 목사는 "외할아버지는 아들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 그간 딸들이 가문을 이어갔다"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할아버지에 대해 거의 몰랐다. 하지만 손 교수의 연락을 계기로 그분의 삶을 알아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할아버지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정신을 후손들과 나누고 이어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며 "미국에 많은 후손들이 있는데, 각 기관의 도움으로 외할아버지 흔적을 살필 기회가 생겨 너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후손들은 중구 대신동에 있는 계성중학교로 향했다. 김 선생의 장남 김용해 지사의 모교(당시 계성학교)여서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자 당시 학생들이 독립선언문을 인쇄한 지하실이 나타있다. 후손들은 지하실에서 조상의 흔적을 일일이 살폈다.


강당에 모인 계성중 학생들은 후손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외치는 행사를 가졌다. 1919년의 함성을 다시 재현한 것. 후손 크리스 최(52)씨는 "한국에 네 번째 방문했지만, 김 선생의 흔적을 직접 따라가 본 건 처음"이라며 "그가 목숨 걸고 싸운 역사를 현장에서 느끼니 절로 겸손한 마음이 생긴다"고 했다.


이날 '김태련'이라는 이름은 대구YMCA, 남산교회, 계성중 등 당시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장소들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했다. 독립운동 후 110년만에 연결된 감동의 장이 펼치진 것이다.


대구YMCA 측은 이날 오후 김 선생의 생애를 바탕으로 제작된 청소년용 웹툰도 공개했다. 웹툰을 제작한 서승택 작가는 인공지능(AI)를 활용해 디자인한 사진과 영상을 소개했다. 이 웹툰은 향후 교육 콘텐츠로 활용될 예정이다.


서병철 대구YMCA 사무총장은 "김태련 선생은 대구독립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그의 이름 석자는 당시 각 기관이 다시 손을 맞잡게 한 힘을 갖고 있다"며 "여러 기관이 이번 행사를 계기로 과거 정신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미래로 계승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대구YMCA는 향후 김태련 기념사업회를 설립해, 그의 정신을 계승해나갈 계획을 갖고 있다.


김태련(1883~1934) 선생은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기독교 신앙과 청년운동, 민족운동을 결합시켜 독립운동을 실천한 인물이다. 당시 대구YMCA 창립을 주도해 초대 총무를 맡았다. 특히, 이만집 목사 등과 대구 3·1운동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일경에 붙잡혀 2년8개월간 옥고도 치렀다. 장남 김용해 지사는 만세운동 당시 일본 경찰의 고문으로 순국했고, 차남도 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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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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