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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백색소음

2025-07-14 06:00
이근자 소설가

이근자 소설가

어릴 적에는 TV를 틀어놓고 자는 할머니나 어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 조심하며 보고 싶은 프로그램으로 살그머니 채널을 돌리면 "안 잔다. 뉴스 틀어라"라는 말이 자주 돌아왔다. '주말의 명화'를 아쉽게 포기하고 잠들면 어느 순간 도란도란 말을 주고받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뭔가. 오로지 나의 티브이 시청을 방해하기 위해 잠자는 연기라도 했는가 싶어 서운했지만 곧 그 말소리를 자장가 삼아 다시 잠들었다.


이제 나도 적당한 소음이 들리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다. 몸의 기관들이 퇴화해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면 기관들끼리 엉기고 충돌해 불협화음을 냈다. 귓속에서 모기가 날아다니거나 기차가 칙폭칙폭 러시아의 설원을 달리는 듯했고, 창밖의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고 가만히 누워 있는데 심장이 마구잡이로 두근거린다거나, 갑자기 사우나에라도 들어간 듯 머리 꼭대기부터 열기에 휩싸여 땀에 흠뻑 젖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실신의 전조 증상인 아득함에 사로잡히면 더듬더듬 갓길을 찾아 차를 세우곤 했다.


어느 동물학자는 북아메리카의 서부 대평원에 사는 산쑥들꿩 수컷이 새벽에 추는 팝핑 댄스를 관찰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새를 찾아 꼬리표를 달아야 하는데, 자신의 발소리를 숨기려고 백색소음을 틀어놓는다. 바로 오스트레일리아의 하드록 밴드인 ACDC의 노래라고 했다. 내게는 두통을 유발하는 하드록이 백색으로 분류되다니. 숲을 헤치고 나아가는 소리를 더 시끄러운 소리로 덮는 게 그의 전략이었다.


백색소음은 사실 물리학에서 쓰는 용어란다. 전도체 안의 전자들에 열교란이 일어나면 잡음이 생긴다. 이는 모든 형태의 전자 장비와 매체에서 나타나며, 모든 범위의 주파수에 대해 균일한 전력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열잡음은 '흰빛'과 같은 형태의 주파수 스펙트럼에 속했고, 소리의 패턴은 무작위적이지만 제거될 수 없다고 했다.


혹시 현대인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곳에서 난다는 전자기기가 내는 흰색잡음에 시달려 스트레스가 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피할 데라고는 없지 않은가. 티브이에서 보는 자연인 또한 편하게만 보이지는 않다.


내 경우 몸 내부의 기관들이 노화하여 마구 엉기고 소용돌이치며 내는 소음을 덮는 소리로는 클래식이 좋았다. 클래식이라 해도 클라이맥스가 확실한 곡은 곤란하다. 심심하지만 잔잔한 음률이라, 밖으로 향하는 내 의식을 불러들여 작은 죽음 같은 잠의 문으로 안내하는 곡, 쇼팽의 녹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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