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2024년 개봉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서로 다른 결핍과 상처를 지닌 두 청춘, 재희와 흥수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만나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고 동거하며, 우정과 신뢰, 의리를 쌓아가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거대한 도시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인간관계의 온기, 그리고 그 관계를 지탱하는 신뢰와 의리의 의미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영화의 서사는 흥수의 비밀이 재희에게 드러나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가는 흥수에게 재희는 어떤 판단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감싸며 보호한다. 이 장면은 신뢰의 씨앗이 뿌려지는 순간이자, 인간관계의 본질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타인의 약점을 들춰내기보다 그 취약함을 감싸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신뢰의 출발점이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이 될 수 있어?"라는 재희의 한 마디는 흥수가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세상과 화해하는 전환점이 된다. 영화는 이처럼 신뢰가 어떻게 관계를 단단하게 만들고, 그 신뢰가 흔들릴 때 관계는 어떤 균열을 겪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신뢰가 관계의 시작이라면, 의리는 관계를 지키는 마지막 울타리다. 재희와 흥수는 서로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며, 때로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존재로 남는다. 재희가 삶의 고비마다 흥수에게 기대듯, 흥수 역시 재희의 곁을 묵묵히 지킨다. 그들은 서로의 연애, 실연, 사회적 편견, 경제적 어려움 등 숱한 현실의 벽 앞에서 때로는 다투고,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끝내 다시 곁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의리는 단순한 감정적 충동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힘든 순간마다 손을 내밀어주는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네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네가 나를 통해 더 온전해지기를 바라는 욕망'을 품는다.이는 우정과 사랑, 가족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관계의 가장 근원적인 윤리로 작동한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계-내-존재(Dasein)'로 규정하며,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자기 존재를 자각한다고 보았다. 대도시의 익명성과 고립 속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결핍된 존재이며, 이 결핍이 관계를 탄생시킨다. 영화 속 재희는 사랑에 솔직하지만 내면의 허기를 감추지 못하고, 흥수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사회의 편견과 싸운다. 이처럼 각자의 상처와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두 사람은 연인도, 전형적인 친구도 아닌, 기존 관계의 틀을 벗어난 '대안 가족'으로 거듭난다. 그들은 세상 누구보다도 서로를 이해하는 존재로, '물과 물고기처럼 떨어질 수 없는 친밀한 관계'인 '수어지교(水魚之交)'를 이룬다. 이는 깊은 신뢰와 의리, 절대적인 지지와 의존의 상징으로, 인간관계의 참된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수어지교의 핵심은 상호 의존성에 있다. 물고기는 물 없이는 생존할 수 없고, 물 역시 물고기를 통해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한다. 이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으며,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신뢰의 순환 속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회적 윤리이자, 건강한 공동체의 토대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뢰와 의리로 묶일 때 비로소 진정한 공생과 발전이 가능하다.
2025년 7월 기준,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63~65%를 기록했으며, 보수 강세 지역인 대구경북(TK), 부산·울산·경남(PK)에서도 50%를 넘겼다. 이제 우리 사회가 신뢰와 의리로 단단히 묶인, 진정한 공생의 공동체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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