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대한 호기심 컸던 소년
전쟁사 & 무기 연구가 취미로
실생활서 쓸모없는 유희 취급
하지만 가끔은 쓸모있을 때도
무쓸모 취미 영위도 가치 있어

임훈 문화팀 차장
기자는 어린 시절부터 역사에 대한 호기심이 컸는데 특히 전쟁사와 무기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다.
국가 간 최후의 갈등 해결책인 전쟁을 통해 그동안 수많은 역사가 새로 쓰여졌고, 인류는 전쟁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최신 기술을 적용한 무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전차나 전투기, 군함 등의 프라모델을 만드는 취미를 가졌다. 고교 때부터는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들과 밀리터리 관련 잡지를 나눠봤으며, 1995년 구(舊)소련의 키예프급 2번 항공모함 민스크가 해체를 위해 경북 포항 해안에 정박돼 있을 때 이를 직접 구경하러 갈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때가 있었다. 대학 시절 때도 영국 BBC나 일본 NHK 등 다양한 매체에서 제작한 전쟁 다큐멘터리를 몇 번이나 반복해 봤다. 대학 도서관에서는 전공서적을 던져두고 2차대전 참전국 군복 삽화가 실린 서적에 몰두한 나머지 시험을 망쳤던 기억도 있다.
그러던 중 지난 14일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장용근의 폴더: 가장자리의 기록'展(전) 기자간담회 날, 실생활에서 전혀 쓸모없을 것 같은 기자의 취미가 다시 발동됐다. 지역출신 사진작가인 장용근의 작품에 등장하는 한국과 대만의 전투기 기종을 단 한번에 알아맞혔다. 또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미(美) 해군의 항공기가 특정 모델의 해상초계기임도 바로 알아챘다. 해당 작품들은 각각 전쟁에 대한 긴장감과 장엄한 산업현장의 모습을 표현하려 한 것인데, 기자의 넓은 오지랖에서 나온 작품 속 항공기에 대한 분석이 당시 함께 자리한 기자들에게 도움이 됐을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기자간담회에 방해가 안됐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지만, '예술작품에 꼼꼼한 정보까지 더 곁들인다면 더 좋을 수도 있지'라는 생각에 그랬던것 같다.
기자 생활 중 기억을 떠올려보니 취미가 일에 실질적 도움이 된 적도 있었다. 15년 전쯤 편집국 당직 날로 기억한다. 당시 미 해군 항공모함이 부산항에 입항하는 사진이 다음날 신문 1면에 실리게 됐다. 그런데 기자가 해당 사진을 보니 실제 입항하는 항공모함과 다른 선박임을 확인했고, 다행히 1면 사진은 오류 없이 지면에 나갈 수 있었다.
수년 전 제주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기자는 제주 서귀포 대정읍에 자리한 알뜨르비행장을 방문했는데 안내판 속 일본군 전투기에 대한 사진설명 오류를 발견했다.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패전한 일본군의 전투기가 알뜨르비행장에 버려져 있는 사진이었는데, 안내판은 해당 기종을 일본 미쓰비시사(社)의 '제로' 전투기라고 적고 있었다. 그런데 기자가 자세히 살펴보니 사진 속 전투기는 일본 카와사키중공업이 생산한 'Ki-61 히엔'이었다. 히엔 전투기의 경우 2차대전 당시 영국 본토항공전의 주역 중 하나였던 독일 메셔슈미트 'BF-109'와 닮은 수냉식 엔진을 채택했는데, 특이한 라디에이터의 모양으로 바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히엔은 미국의 B-29 전략폭격기 요격 용도로도 사용되었기에 태평양전쟁 말기 제주의 방어를 위해 대본영이 수립한 '결7호 작전'과의 연관성도 추측할 수 있었다. 안타까운 점은 당시 제주지역 행정관청에 해당 안내판의 수정 필요성을 알렸는데, 지난해 같은 장소에 갔더니 안내판은 뽑혀나가고 없었다는 점이다.
흔히들 아저씨들의 취미는 실생활에서 쓸모없는 유희쯤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가끔은 쓸모가 있을 때도 있다. 모든 '무쓸모 취미'를 영위하는 이들에게 오늘의 하프타임을 바친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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