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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易地思之]이재명 ‘굿캅’ 전략의 함정

2025-07-29 06:00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군주는 미움을 받는 일은 타인에게 떠넘기고 인기를 얻는 일은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 이탈리아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지도자 또는 리더들이 즐겨 쓰는 수법인데, 현대적 버전으로 말하자면 '굿캅 배드캅(Good cop-Bad cop)'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의 베스트셀러인 '설득의 심리학'에 자세히 등장하는 이 전략은 원래 경찰이 용의자를 취조할 때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다. 먼저 '나쁜 경찰관(bad cop)'은 무거운 형량을 언급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용의자를 압박한다. 다음에 '착한 경찰관(good cop)'은 정반대로 행동하면서 마치 용의자의 편인 듯 착각마저 불러 일으키게 만든다. 그러면 용의자는 나쁜 경찰관과 착한 경찰관을 비교하는 '인지적 대조 원리'에 따라 착한 경찰관에게 마음을 열고 범죄를 자백할 가능성이 높다나.


그간 한국에서 이 전략을 가장 잘 활용한 정치인은 전 대통령 문재인이었지만, 문재인을 압도적으로 능가할 정도로 '굿캅'의 달인으로 등장한 인물이 있으니 그는 바로 현 대통령 이재명이다. 이재명의 대통령 직무수행 한달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긍정적이다. 야권 정치평론가인 장성철이 "친명 패널이라고 손가락질당해도 어쩔 수 없다. 비판할 게 없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불통의 왕'으로 악명이 높았던 전 대통령 윤석열과의 대비효과 덕을 본 점도 있겠지만, 이재명의 '굿캅' 전략이 워낙 매끄럽게 잘 수행되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재명이 앞으로 계속 여론의 호평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굿캅' 전략에 함정은 없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이재명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서 6·3 대통령 선거를 이틀 앞둔 6월 1일 고향 안동을 찾아 "민주당에 기회를 주시면 대구·경북 지역 인사들 중 유능한 인사를 많이 발굴해 정부에 참여 시키겠다"며 "탕평·협치를 해서 '민주당이 돼도 나쁘지 않구나'라고 생각하시도록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선거 기간 중 여러 차례 탕평·협치를 강조했고, 대통령에 당선돼 임기를 시작한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이재명은 임기 18일 만인 6월 22일 여야 지도부와 처음 오찬 회동을 했다. 그는 이날 '협치'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여야의 상징색인 파란색과 빨간색이 섞인 넥타이를 맸고, 오찬 메뉴도 다양한 색깔이 섞인 오색 국수가 준비됐다. 그는 6월 26일 국회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에서도 "경제와 민생을 살리는 데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위기 극복을 위한 협치를 강조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인 27일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법제사법위원장 등 주요 상임위원장을 단독으로 선출했다. 이에 반발하며 본회의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야당이 된 뒤 처음으로 규탄대회까지 열었다. 이들은 '묻지마식 의회폭주 민주당식 협치파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전부 새빨간 거짓말", "우리를 대놓고 조롱한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대통령과 민주당의 이중성을 지적한 중앙일보 사설엔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이재명이 웃습니다. 협치 한댔더니, 진짜로 그럴 줄 알았냐고. 자기를 아직도 그리 모르냐고. 우리 뭐 하나 할 수 있는 것조차 없어보이는 막다른 길에 들어섰다고 해도 비웃음의 대상이 되지는 맙시다. 우리 나라 일구고 지킨 보수 어르신들,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나실 일 하진 맙시다. 바로 보자 이재명. 속지말자 이재명. 제발 정신 차리고 살자!"


아무려면 그렇겠는가. 악의적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져 보자.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일이 이후에도 계속되었다는 점이다. 6월 30일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겨냥해 "민생 방해 세력과의 전면전을 선언한다"고 했다. 이에 경향신문은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협치를 강조하는 것과 달리 여당은 강공 모드를 이어가고 있다"며 "대통령실은 국민 통합 행보를 펴고, 국회 제1당인 여당은 공약 이행 속도전에 나서는 '투 트랙' 전략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이재명은 방송법에 대해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속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감동적인 말을 했지만, 감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7월 7일 오전 대통령실 대변인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방송 3법에 대해 대통령의 생각을 내세워 "국민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방송법이 필요하다"며 신중론에 무게를 두었지만, 민주당은 6시간 뒤 국회 상임위에서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했다. 대통령실 발표와 다른 일이 벌어졌는데도 대통령은 법안 처리 뒤 열린 만찬에서 "(방송법 처리는) 내 뜻과 같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방송 장악 의도"라며 펄펄 뛰었는데, 이 또한 '투 트랙' 전략인가?


이재명이 '굿캅'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배드캅' 역할을 하는 일은 전반적인 국정운영에서 예외적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패턴이다. 이재명은 "정부와 기업이 함께 뛰는 원팀 정신"을 위해 대기업 총수들과 잇단 만찬 회동을 갖고, 이는 언론에 널리 보도된다. 하지만 민주당은 재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규제 중심의 법안들을 밀어 붙인다. 이런 법안들이 대통령과 총수들의 만찬에서 열띤 토론 주제로 논의된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게 돼 있다. '원팀 정신'을 보여주기 위한 쇼는 '이미지 정치'의 용도로만 소비될 뿐이다.


'이미지 정치'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지만, '굿캅' 전략이 장기간 지속되면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근본적인 신뢰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진영 전쟁'에서 무조건 이기기만 하면 되는 야당 지도자 시절엔 그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팬덤정치 지지자들은 상대편을 이기는 데 있어서 지도자의 수단과 방법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정운영을 책임 진 대통령은 다르다. 지금은 500년 전의 마키아벨리 시대와는 달리 모든 게 다 공개되고 빨리 전파되는 세상이기에 지도자에 대한 불신은 국정운영에 치명적일 수 있다. 표리부동(表裏不同)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굿캅' 연기 대신에 속마음과 일치하는 언행을 보여주면서 진정한 소통을 위해 애쓰는 게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책임도 못질 멋진 말을 하려는 허영심을 자제할 필요가 있겠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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