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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천일영화]전지적 관객의 시점을 위하여, ‘전지적 독자 시점’

2025-08-01 06:00
윤성은 영화평론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김병우 감독의 '전지적 독자 시점'(이하 '전독시')은 2018년부터 약 2년간 연재된 웹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 없는 영상 콘텐츠를 찾기 어려운 요즘이지만 '전독시'는 새삼스레 '각색'이 도마 위에서 처참하게 난도질 당하고 있는 중이다. 원작 팬들의 분노를 반영하듯 이 300억짜리 영화는 며칠 만에 4주 전 개봉한 'F1 더 무비'(감독 조셉 코신스키)에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전독시'는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하 '멸살법')이라는 웹소설의 유일한 독자인 '김독자'(안효섭)가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 '멸살법'이 현실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아포칼립스 판타지는 김독자가 '멸살법'의 작가에게 결말에 동의할 수 없으며 당신의 소설은 최악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면서부터 시작된다. 김독자는 작가로부터 그렇다면 네가 한 번 결말을 바꿔보라는 답장을 받게 되는데, 답장을 읽자마자 지하철이 멈추고 소설 속의 '도깨비'가 나타난다. '멸살법'은 롤플레잉 게임의 구조를 가져온 소설로, 세계가 '시나리오'라는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고, 인간은 각 단계별 시나리오의 미션을 완수해야만 살아남는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도깨비들은 인간들이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비규환의 세계를 '스타 스트림'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중계하고, 신적인 존재인 '성좌'들은 그 리얼리티 쇼 즐기며 더 자극적인 시나리오를 연출하는 도깨비들을 후원한다.


이처럼 방대하고 매력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는 만큼, 웹소설 '전독시'는 누적 조회수 2억 뷰 이상을 기록했고,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었으며, 현재 웹툰으로도 연재중이다. 즉, 돈이 들더라도 영상화를 꿈꿔볼 만한 IP다. 서바이벌 게임의 스릴과 긴장감이 있고, 동시대의 트렌드를 살린 아이템들도 가득하며, 화려한 시각효과로 눈호강을 시켜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정도 영화에서 성취해낸 요소들이다. 문제는 서사의 초점이 다른데 맞춰져 있었다는 것, 말하자면 각색의 안일함이었다. 551화나 되는 방대한 양의 소설을 2시간짜리 영화에 담으려다 보니 선택과 집중이 여느 각색 작업보다 더 중요했는데, 요상하게도 거기에 원작 팬들의 기대는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다. 소설대로라면 '멸살법'의 전개와 결말을 아는 '독자'가 어떻게 주변 인물들을 성장시켜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는지, 제목 그대로 철저히 '독자'의 시점에서 시나리오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져야 했으나 영화는 세계가 멸망해도 이타심을 버리지 말자는 교훈을 강화하는 서사를 택했다. 물론 주제의식 자체는 옳다. 그러나 '오징어게임'을 시즌3까지 감상하고, '더 에이트 쇼'의 맛을 본 관객들에게 만 오천원을 내고 그 디지털 버전을 보겠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망설일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독자적인 매력을 추구하기보다 기존에 성공한 콘텐츠들을 벤치마킹 하는데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전독시'는 굳이 원작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완성도가 뛰어난 영화라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전독시'를 통해 영화계가 강력히 재고해보아야 할 것은 이제는 일반화가 되어 버린 원천 IP의 영상화 방향성이다. 저작료만 지불했다면 핵심 소재로 완전히 다른 콘텐츠를 만드는 게 잘못은 아니다. 다만 원작의 명성에 기대고 싶고, 원작의 팬들을 존중한다면 좀 더 사려 깊은 각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애초에 영화화 해서 이득을 볼 수 있는 IP인지 잘 따져 보는 것도 중요하다. 침체된 영화계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반성과 성찰밖에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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