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저산단의 변신…폐공장이 시뮬레이션 거점으로
3D 스캐너·프린터 등 대당 수 억원 장비 즐비
총 148개 기업(192건) 제품 개발 지원 성과

지난 1일 찾은 대구 달서구 성서산업단지 내 '공정혁신 시뮬레이션센터' 전경. 이승엽기자.

공정혁신 시뮬레이션센터 조성 전 옛 봉제공장 모습. <시뮬레이션센터 제공>
낮 최고기온이 37℃를 웃돈 지난 1일 대구 달서구 성서산업단지. 1993년 완공 후 한때 대구산업의 중심축으로 부상했던 곳이지만, 변화의 물결을 따라가지 못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낡은 공장들을 뒤로한 채 공단 중심부로 진입해 보니 깔끔하게 도색된 건물 하나가 단연 눈길을 끌었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버려진 봉제공장이었던 이곳은 인공지능(AI) 기반 최첨단 시뮬레이션 장비를 갖춘 기업지원 거점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바로 대구시와 경북대가 손을 잡고 조성한 '공정혁신 시뮬레이션센터'로,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을 높여 주는 'DX(디지털 전환) 및 AX(AI 전환)의 산실'이 되고 있다.
공정혁신 시뮬레이션센터(이하 센터)는 산업자원통상부의 스마트그린산단 촉진사업 일환으로 추진됐다. 시뮬레이션 활용 지원 인프라를 구축해 지역 제조업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게 목표다. 2023년부터 전국 6곳에서 시행됐으며, 올해 3차년도 사업에 접어든 지자체는 대구를 비롯해 3곳뿐이다. 총사업비는 258억원(국비 180억원)으로, 대구 센터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노후산단 폐공장에 조성돼 사업 취지와도 완벽히 부합한다는 평가다.

대구 성서산단 내에 들어선 공정혁신 시뮬레이션센터에서 한 직원이 3D 스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승엽기자.

대구 성서산단 내 들어선 공정혁신 시뮬레이션센터에서 한 직원이 3D 스캔본을 통해 추출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역설계하고 있다. 이승엽기자.
센터 안으로 들어가 보니 대당 수억원을 웃도는 초고가 장비들이 즐비했다. 기업이 새 제품을 개발하려면 꼭 필요하지만, 너무 비싸 웬만한 기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장비다. 센터는 제품 설계부터 역설계, 시뮬레이션, 실증 제조, 검사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는 인프라를 무상(지원조건에 한해)으로 기업에 제공하고 있다. 가장 먼저 기자를 맞은 건 초대형 3D 스캔 부스였다. 부스 안 테이블에 제품을 올려 놓은 후 버튼을 누르자 스캔 장비를 장착한 로봇팔이 순식간에 여러 각도에서 촬영을 마쳤다.
같은 시각 사무실에서는 3D 스캔을 통해 확보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역설계 작업이 한창이다. 스캔 과정을 거친 제품을 도면화하는 작업이다. 이날은 A기업의 발주로 석발기(정미한 쌀에 섞인 돌을 골라내는 기계)를 도면화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 과정을 거쳐 탄생한 도면은 해당 기업의 기술력과 결합돼 새 제품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3D 프린터를 통해 시제품이 제작되고 있다. 이승엽기자.
이곳의 자랑인 초대형 3D 프린터는 기업의 상상력(도면)을 현실로 구현해 낸다. 플라스틱·메탈 등 소재별 3D 프린터를 갖춰 '다품종 소량' 등 모든 생산공정이 가능하다. 특히 올해부터 전국 유일 고성능 컴퓨팅 시스템이 구축돼 초정밀·고성능 AI 작업도 가능해졌다. 이 같은 기술력 및 장비를 바탕으로 센터는 시뮬레이션 기반 총 148개 '시업'(192건)의 제품개발을 지원해 해당 기업의 매출액 증가(34억원)와 비용절감(14억4천만원), 기간 단축(35%) 등의 성과를 이끌어냈다.
<주>공성은 플랙스샤프트(배관 청소기)의 부하 및 꼬임 현상 등을 해결하고자 시뮬레이션 및 시제품 제작을 의뢰해 왔다. 이에 센터는 기존 수입제품 대비 저렴한 부품과 AS가 용이하고, 에너지까지 절감할 수 있는 친환경 수송기기를 개발해 공성에 약 4억원의 매출을 안겨 줬다. 원자력용 전동액추에이터(에너지 변환장치) 제작도 빼놓을 수 없다. <주>에너토크의 요청으로 모터 구동과 하중, 기어 치부, 치면의 강도 해석 등 전반적인 강도를 높인 원자력용 전동액추에이터를 개발해 2억6천만원 상당의 매출액과 제품 국산화를 달성했다.
센터는 기업 친화적 개방형 거점공간도 제공한다. 서버실 및 장비실, 사무실 등 업무공간 외에도 협업실과 사무공간 등 인근 업체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개방형 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센터가 지원 공간을 넘어 기업 커뮤니티 중심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대구시는 기업 수요를 반영한 사업 추진을 통해 신시장 개척, 제품 신뢰성 향상, 시행착오 감소 등 기업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기업의 기술 및 시장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구시 류동현 ABB산업과장은 "AI 기반 공정혁신 시뮬레이션센터를 중심으로 산자부에서 추진 중인 AI 팩토리 사업과 중기부의 AX산단 등 중앙부처의 AX 전략과 발맞춰 대구가 AI 자율제조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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