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첨운재 청소를 마친 애국단체 달서구 행복두례봉사단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태칠시민기자 palgongsan72@kakao.com
지난 9일 오전 9시쯤 대구 앞산 둘레길의 달비골 근처, 첨운재(瞻雲齋)라고 안내 표지판이 가리키는 길 아래 외딴집에서 와글와글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몇 사람은 마당에 잡초를 뽑고 나머지는 대빗자루로 마당을 쓸며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이들은 달서구 노인문화대학 문화유적학과 27기 졸업생들의 모임인 '행복두레 봉사단(회장 이명화)' 회원 15명이다.
대부분 60대 후반에서 70대인 노인들이다. 특이한 점은 청일점 윤이술(78)씨를 제외하면 전부 여성들이다. 이들은 지난 2월 졸업식을 한 후 바로 애국지사 윤상태 선생 별서(別墅·별장이나 농막 비슷 한 건물)를 청소하는 봉사단을 만들기로 했다. 지난해 수업 중 답사한 그곳의 모습 때문이었다. 마당엔 잡초가 무릎 이상 올라와 있었고 모기와 벌레들이 날아다녔다. 뱀이 나올지도 모를 마당에선 잠시 모여 서서 묵념도 하기 힘들었다. 이날 '누가 독립운동 유적지를 찾겠느냐'며 탄식했다.
윤상태 선생은 달서구 상인동 사람으로 일제의 서슬이 퍼렇던 1915년 2월에 앞산 안일암에서 조선 국권 회복단이라는 비밀 결사 조직을 만들고 최고지위인 통령이 되어 항일운동을 지휘하다 체포되어 일경의 고문으로 순국했다. 조선 국권 회복단은 비록 대구에서 만든 조직이었지만, 조선 전체를 총괄하는 임시정부 같은 것으로 통령·외교부장·교통부장 같은 체제를 갖춘 거대한 조직이었다. 선생이 애국지사들과 독립운동을 모의했던 장소가 바로 첨운재였다.
행복 두레 봉사단은 금년 3월에 봉사단을 구성 하고 바로 실천에 들어가 4월부터 지난 9일까지 매월 한 차례씩 마당에 잡초를 뽑고 건물의 거미줄을 치우고 길목을 쓸어 사람들이 탐방하기 쉽게 만들었다. 20여평 밖에 안되는 마당이지만 고령의 노인들은 벌레에 물려가며 힘겹게 일했다. 풀씨가 끊임없이 내려와 뿌리를 내렸지만, 서서히 마당은 흙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봉사, 다음 달 봉사를 위해 그곳을 다시 찾아 왔을 때 사람이 다녀간 발자국과 먹다가 마당에 버리고 간 복숭아씨 같은 것이 그들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와, 드디어 사람들이 찾아오는가 보다." 봉사단의 희망은 오로지 많은 사람이 찾아주고 항일의 역사를 기억해주는 것이었다. 이명화 회장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우리라도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누가 이곳을 찾아 오고 애국지사들의 행적을 기억하겠느냐 "고 설명했다. 장미애 총무는 "자신의 몸도 추스르기 힘든 어르신들이 모임 날짜를 통보하면 일정있는 사람을 빼고는 모두 기꺼이 참석 하신다"며 고마워했다.
이날 첨운재를 찾아온 달서구 노인문화대학 조재경 교학처장은 "예전에는 풀이 많아 이곳에 들어오는 길을 찾기도 힘들었는데, 오늘 와보니 진입로부터 깔끔하게 정리되어있고 마당이 놀라울 정도로 깨끗해졌다"며 이들의 이러한 사회참여 활동이 곧 곧 노인문화대학 목표와 일치한다고 하며 칭찬했다. 광복 80주년, 그들의 잡초 뽑기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뜻깊은 애국 봉사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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