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재근 문화평론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신드롬이 뜨겁다. 케이팝 아이돌이 악귀에 맞서 세계를 지킨다는 내용의 미국 만화영화인데 넷플릭스 만화영화 역대 1위에 올랐고, 조만간 넷플릭스 영화 역대 1위에도 오를 태세다. 지난 주엔 주제가가 미국과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 모두 1위를 했고, 이번 주엔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톱10에 OST 3곡이 진입했다. 이 정도면 열풍 수준이다. 아카데미상 만화영화 부문과 주제가 부문 수상도 매우 유력해 보인다.
제목이 가장 큰 진입장벽이었다. 케이팝을 내세운 싸구려 기획물 같은 느낌이어서 처음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꼈다. 또 케이팝이 인기라고는 하지만 미국에선 여전히 10~20대 여성들 위주의 비주류 시장이다. 그러니 케이팝을 명시한 제목이 마니아들을 위한 비주류 작품 같은 느낌을 줬다.
제목이 그렇게 초기 흥행에 부정적으로 작용했지만, 케이팝에는 역대급 호재가 되었다. 대히트작이 대놓고 케이팝을 내세우면서 엄청난 홍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케이팝 팬들이 봤지만 입소문이 퍼지자 일반인들의 관람이 대거 이어졌다. 극중에서 케이팝 아이돌이 부르는 OST 수록곡들도 서구의 일반인들에게 전파됐다. 또 서구 어린이들이 과거 '겨울왕국' 이상으로 열광하면서, 케이팝 세대가 탄생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 아이들이 나이를 먹었을 때 한국에 대한 미국사회의 호감도가 최고조에 달할 거라는 분석이다. 케이팝과 한국문화가 지금 가장 핫한 트렌드라는 걸 전 세계에 다시 한번 각인시킨 효과도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케이콘텐츠 또는 케이팝이라고 할 수 있느냐란 논란이 있었다. 미국 회사의 작품이라서 문제가 된 건데, 무의미한 소모적 논란에 불과하다. 우리가 어떻게 규정하건, 어느 나라 회사에서 만들었건, 관객은 이 영화를 케이팝 영화라고 생각하면서 본다. 제목부터가 그렇고, 내용도 한국에서 사는 한국 가수의 이야기다. 한국의 다양한 모습, 음식, 노래 등이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규정을 어떤 식으로 하든 이 영화의 가장 큰 수혜자는 케이팝과 한국이 될 것이다. 영화의 초대형 히트로 인해 소수 비주류 문화였던 케이팝이 보편 주류 문화로 성장할 가능성이 생겼다.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까지 커졌다.
이 영화와 관련해 심각하게 논의할 주제는 따로 있다. 왜 케이팝 보유국인 우리가 이런 작품을 먼저 만들지 못했느냐는 점이다. 이 영화는 한국계 제작진이 만들었다. 우리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우리는 해외 진출용 만화영화를 만들 때 항상 한국적 코드를 빼려고 했었는데, 이 작품이 한국적 코드가 통한다는 걸 보여줬다. 우리 업계도 이제 앞으로는 더 자신 있게 한국적인 요소들을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 만화영화 업계가 영세하기 때문에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케이팝은 안 그래도 그동안 놀라운 성장을 해왔는데 이제 외국에서 자체적으로 케이팝 영화를 만들어 히트시키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른 차원으로 도약한 느낌이다. 추가 시리즈가 제작될 것이기 때문에 당분간 미국 회사에 의한 케이팝 신드롬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 과거 미국 영화 속 한국 묘사는 문제가 많았지만 이 작품에선 발전되고 아름다운 곳으로 나오며 디테일 묘사도 생생하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호감을 더욱 키웠다. 경제적으론 위기이지만 대중문화계에선 한국의 웅비가 진행되는 모양새다. 이런 효과를 만들어낸 케이콘텐츠업계에 지원과 관심이 더 크게 일어나면 좋겠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