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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무속인과 법조인

2025-08-25 06:00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최고 권력자와 연결되어 나라를 혼돈에 빠트렸다는 관상가와 역술인들이 연일 언론을 장식한다. 제정 러시아 말 라스푸틴이나 고려 말 신돈이 떠오르는 무속의 시대 같다. 미래가 궁금하고, 미리 알아서 위험을 피하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다. 몇 시간짜리 영화도 엔딩까지 가슴 졸이는 것이 싫어서 결론부터 확인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요즘 전 대통령 부인을 백공작에 비유하면서 왕비의 관상이라고 칭송하였던 관상가가 뉴스에 계속 등장한다. 대통령 관저 이전에 역할을 한 것으로 보도되는 그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2022년 3월 말쯤 제20대 대통령 선거 직후 개최된 언론인단체 행사에서였다. 자신이 달마대사가 창안한 것으로 전해지는 사람의 외모와 성격을 동물에 비유하면서 운명을 점치는 물형관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고 주장하면서, 대통령 당선을 정확히 맞추었음을 자랑하였다.


수십억 인구를 어떻게 수십 종의 동물로 분류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인간이 그렇듯 동물들도 비슷하게 생겼어도 다 다르게 살다 죽었읕 것인데,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운명을 외형적으로 닮은 동물에 비유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딸랑 혈액형 4가지에 따라 성격을 분류하는 것보다는 조금 다양해 보였지만, 그의 주장 역시 전혀 신뢰가 가지 않았다.


불과 3년 만에 그의 예측은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가장 팩트에 충실해야 할 언론인 모임에서 그런 무속인이 초청되어 특강을 한 사실이다. 기자처럼 사실확인과 그에 대한 입증이 생명인 법조인 중에도 무속인과 인사 청탁으로 연결된 의심이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영화 '더 킹'에서 권력에 줄서기 위해 차기 대통령의 당선을 무속인에게 의존하는 검사들을 풍자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현시점에서 보면 영화가 아니라 다큐 같다.


무속인과 법조인의 공통점 중 하나는 찾아오는 사람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현상을 다양하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항상 사실은 하나인데 해석이 문제이다. 최근 전직 대통령 부인과의 접견 내용을 두고 변호사들끼리 날 선 공방이 있었다.


누가 진실한지는 관심 없다. 어차피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른 해석과 주장이 난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변호사로서 아쉬운 것은 접견권이 남용되고 이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등장할 여지가 생겼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피고인이나 피의자의 인권 보장은 변론권 확대와 비례하였다. 구속된 당사자와 만나고 소통하는 접견교통권은 변론권의 핵심 중 하나이다. 수많은 변호사와 변호사단체가 변론권을 제한하려는 수사기관과 투쟁하면서 쟁취한 것이다.


접견 내용을 동의 없이 외부에 유출한 것은 변호사로서 비밀유지의무 위반이 문제된다. 만일 변론과 무관하게 단지 지인의 부탁으로 방문하면서 변호사 지위를 이용하여 접견 신청권을 남용한 것이라면 품위유지의무 위반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사적 목적 방문으로 한정된 접견실을 차지하느라 정말 접견이 필요했을 동료 변호사의 변론권을 침해하였다면 비난받아 마땅한 비윤리적 행태이다.


근거도 불명확한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혹세무민하는 무속인이나, 국민의 인권과 직결되는 변론권을 사적인 목적으로 훼손하는 법조인이 판치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무덥고 습한 날씨보다도 더한 불쾌함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진정 국민의 불안한 마음을 위로할 줄 아는 제대로 된 무속인과 법조인이 가을바람처럼 시원하게 등장하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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