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근자 소설가
나는 "우리 시어머니와 궁합이 잘 맞았어"라고 말하곤 한다. 사실이었다. 나는 시어머니를 소재로 첫 소설을 썼다. 어머님의 마음에 고여 몸을 크게 부풀린 채 이리저리 출렁이는 슬픔이 크게 다가와서였다. 어릴 적에는 엄마의 슬픈 표정을 떠올려 그 마음을 어림잡으면 일이 초 만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심리적인 책임감이 큰 엄마에 비해 어머님의 슬픔에 나는 좀 객관적이게 될 수 있었는데, 내가 그녀의 슬픔에는 보탠 게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마음껏 어머님 편을 들 수 있었고, 나와는 궁합이 잘 맞았다.
여러 의례를 치른 후 처음 편하게 밥을 먹는 자리에서였다. 속도가 비슷했다. 나는 밥을 늦게 먹는데 어머님도 그랬다. 따져보자면 어머님보다 내가 더 늦었다. 어머님이야 삼의 섬유질로 삼베 실을 만드느라 이가 다 녹아내렸기에 씹는 게 힘들었으니 당연했다면 나는… 이유가 있기는 하다(여기서는 건너뛰자).
어머님은 특히 나를 잘 봐주었다. 사람들은 내 복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어머님은 사람을 천천히 관찰하고 판단했다. 그랬기에 내 특징을 정확히 파악했고 그것에 잘 맞춰주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를 깨우지 않았고, 제사 준비를 할 때도 나를 부엌에 남겨두고 어머님은 자신의 일을 했다. 그러니까 미리 사서 쟁여둔 재료를 꺼내서 이렇게 해볼래, 저렇게 해볼까, 묻거나 채소를 밭에서 따와서 다듬어주는 일 같은 거 말이다. 이왕 하는 음식이니 나도 푸짐한 게 좋았다. 우린 그렇게 손발이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시누이가 제사 준비를 거들어주면서 내가 일하는 방식을 탓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님이 시누이에게 말했다. "갸는 혼자 가만히 두면 알아서 다 한다. 간섭하지 말아라." 시누이가 여섯이니 그들의 표정이나 나를 탐탁치 않아 하는 속도도 다 달랐다. 어머님은 말하곤 했다. "들어온 사람은 잘해주기만 하면 내 식구가 된다." 나는 이 말을 세상 모든 시어머니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아니 명심시키고 싶다. 하지만 그럴 재주는 없으니 나라도 명심하려고 노력한다.
신혼 때의 일이었는데 나중에 시누이가 내게 해준 말이 있다. 내가 뭘 모르는 일이 있었고, 그걸 시누이가 어머님께 일러바쳤다고 했다. 그때 어머님이 자신의 딸에게 말했단다. "내 며느리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니는 네 시댁에나 잘해라."
가족 안에서 인정받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것은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나쁜 사람과 황량한 세상을 버티게 해주는 심리적인 심지가 아니던가. 유일하면서 전부인 그 심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딸과 아들이 좋은 시어른과 장인, 장모 만나기를 소원한다. 참으로 미안한 엄마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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