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나는 15개월 전 이 지면에 "왜 김어준 앞에선 과격해질까"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김어준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안달하는 민주당 정치인들의 행태를 지적하면서 "왜 그들은 김어준 앞에만 서면 작아지면서 그와 그를 따르는 강성 지지자들의 눈에 들기 위해 과격해지려고 애를 쓰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글이었다.
그런 일이 워낙 많이 반복되다보니 이젠 그러려니 하고 무뎌진 게 사실이지만, 민주당 대표 정청래가 지난 5일 김어준 유튜브에 출연해 한 발언은 뜻밖이었다. 그는 국민의힘에 대해 "불법 계엄 내란에 대국민 사과와 진솔한 석고대죄가 기본으로 있어야 (한다)"며 "악수도 사람하고 악수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반성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몰아붙였다.
'악수' 발언은 사흘 전인 2일 당 대표에 당선된 직후에도 한 말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내용과 강도에서 큰 차이가 있다. 당시 정청래는 계엄에 대한 국민의힘의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면서 "그러지 않고선 나는 그들과 악수하지 않을 것이다....아직도 윤석열을 옹호하는 세력이 국민의힘에 있다면 그들과 어찌 손을 잡을 수 있겠나?"라고 했다. 이 말과 "악수도 사람하고 악수하는 것이다"는 말은 크게 다르지 않은가.
한국일보가 <"악수는 사람하고 하는 것"… '내 편'만 보는 정청래의 '위험한 독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의 악수 발언을 비판적으로 다룬 것도 바로 그런 차이에 주목했기 때문이었을 게다. 이 기사에 따르면,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우리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제1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을 만나지 않는다고 얼마나 비판을 했었나"라며 "아무리 야당이 대화할 가치가 없는 상대라 하더라도, 우리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한 초선 의원도 "정 대표가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를) 직접 만나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면 민심도 호응할 것"이라며 "오히려 국민의힘의 잘못을 또 한 번 부각할 수 있는 기회인데 그냥 날리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 옳은 말씀이다. 그런데 정청래는 그런 생각을 못했던 걸까? 그럴 리 없다. 정청래가 평소에 그렇게 말했다면 "역시 정청래답다"라고 생각했겠지만, 내가 '뜻밖'이라며 놀란 건 그의 달라진 지위 때문이다. 그는 이젠 민주당 대표가 아닌가. 그는 4년4개월전인 2021년 4월 관례에 따르면 법사위원장 1순위였음에도 막말 전력 때문에 탈락한 아픈 경험이 있다. 그가 법사위원장이 되면 여야 관계가 경색되고 협치가 물건너갈 것이라는 우려가 민주당 내에서도 제기되자, 그는 서운한 마음을 페이스북에 이렇게 표현했다. "제가 법제사법위원장을 맡으면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하느냐. 정청래는 법사위원장을 맡으면 안 된다는 국회법이라도 있느냐."
그랬던 정청래가 법사위원장을 거쳐 당 대표의 자리에까지 오른 건 사실 이젠 대통령이 된 이재명 덕분이다. 기초단체장이었던 이재명을 단숨에 대선후보의 반열에 오르게 해준 건 2016년 촛불집회 정국에서 구사한, 증오를 선동하는 과격발언이 아니었던가. 예컨대, "박근혜의 무덤을 파, 박정희의 유해 곁으로 보내주자"는 섬뜩한 말에 감격한 강성 지지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과격한 막말과 욕설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이재명이 정청래에 대한 반감의 수위를 크게 낮춰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재명은 늘 정청래식으로 말하진 않았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지사와 당 대표처럼 높은 지위에 오른 뒤엔 부드러운 실용주의자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얼마나 애썼던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초강성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정청래는 시종일관 한곁같다. 정청래의 최종 목표는 당 대표인가? 그것도 대단한 지위이긴 하지만, 그 이상을 넘보진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정말 야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혹 정청래는 자신의 진심과는 거리가 먼 발언을 한 건 아닐까? 김어준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건 아니겠지만, 그의 앞에만 서면 거의 조건반사식으로 국민의힘과 보수를 향해 말을 사납고 독하게 함으로써 강성 지지자들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강박과 습관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며칠 후 정청래가 김어준 유튜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건 그럴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그는 자신의 악수 발언에 대해 "레토릭(정치적인 수사)이었는데, 사람들이 진짜 악수를 안 하는 걸로 받아들여서 악수를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 말을 믿어도 될까? 8월2일 발언은 레토릭으로 볼 수 있겠지만, 5일 발언은 그렇지 않다. 강성 지지자들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줄 수 있는 '적에 대한 혐오와 모멸'이 듬뿍 담긴 실언이었다.
팬덤정치의 대가라고 하면 사람들은 이재명을 떠올리지만, 사실 정청래는 이재명과 겨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팬덤정치를 앞장서서 주장하고 실천해 온 정치인이다. 그는 2016년에 출간한 '정청래의 국회의원 사용법'에서 "국회의원을 움직이는 최고 단위 정치 행위는 팬클럽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팬덤의, 팬덤에 의한, 팬덤을 위한 정치'를 실천한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팬덤정치는 딜레마다. 팬덤정치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학자들은 팬덤정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지만, 이들은 정치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정치인에게 팬덤정치는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재명과 정청래라는 성공사례가 그걸 증명해준다. 아니 이들 이전에 노무현과 문재인이라는 성공사례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성공이라는 건 권력을 잡는 데에 유리하다는 걸 말하는 것일 뿐, 정치의 내용·질과는 무관하다. 팬덤이 권력 획득과 유지엔 크게 기여를 했지만, 정치의 내용·질엔 악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게 옳으리라.
정청래가 계속 팬덤정치를 하겠다는 걸 말릴 수는 없겠지만, 말을 독하게 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은 바꾸는 게 좋겠다. 신축성을 좀 가지라는 것이다. 김어준 앞에서도 당당하게 그런 자세를 역설하는 용기를 내면 어떨까. 그간 김어준의 '형'을 자처해온 사람으로서 동생에게 늘 끌려다니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정치발전은 물론 그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드리는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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